[3040광장] 성녀 테레사의 침

입력 2009-08-25 10:39:35

'마음껏 만져라!' 지난해 TV에서 본 인상 깊은 광고 문구다. 여러 마리 원숭이들이 서로 포옹하고 있는 장면을 담은 휴대전화 CF였다. 이 광고는 우리가 흔히 '스킨십'이라고 표현하는 피부 접촉이 사회적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피부는 내밀한 감정 세계를 여는 마법의 통로이다. 18세기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2세는 궁중의 유모에게 몇몇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기만 하고 어떠한 신체적 접촉도 하지 못하게 명령했다. 놀랍게도 실험에 동원된 아이 가운데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할로가 벌인 원숭이 실험도 흥미롭다. 어미 없이 실험실에서 자란 새끼 원숭이들이 광적으로 집착한 것은 우유병이 아니라 수건이었다. 우리를 청소하면서 수건을 교체할 때마다 새끼 원숭이들은 수건에 달라붙어 매달리고 비명을 질러댔다. 수건을 치워버리고 닷새가 지나면 새끼 원숭이들은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새끼 원숭이가 집착한 것은 먹이가 아니라, 어미의 부드럽고 따뜻한 품이었다.

인간 관계를 이끈다는 점에서 신체 접촉은 사회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 '안아주기 운동'인 '프리 허그'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것은 피부 접촉이 가진 사회적'생물적 교감 효과 때문이리라.

몸이 가면 마음도 따른다. 마음을 나누는 심리적 접촉도 피부 접촉 못지않게 사회를 지탱해주는 필수 자양분이다.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의 행복과 성공이 사회적 결속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이른바 '사회적 관심'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람일수록 일, 사랑, 우정, 결혼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

잘 아는 교수님 한 분은 남을 위한 일을 생활처럼 하신다. 그런데도 그분은 정작 '봉사'라는 표현을 입에 담지 않는 대신 '마음 나눔'이라는 말을 쓴다.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봉사'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고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봉사(奉仕):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 적어도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정도의 정성과 노력을 기울일 정도는 되어야 봉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것이 아닌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작은 일 생색내듯 해놓고 '자원봉사'니 '자선활동'이니 하는 공치사를 해대는 세상이다. 물론 필자 역시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님을 고백한다. 하지만 마음을 나눌 때 분명히 느껴지는 기분 좋은 무언가가 있음을 안다.

어른 말씀 중에 틀린 것 없다 한다. 동네 친구와 뛰어놀다가 상처가 나면 할머니는 침을 바르라고 하셨다. 사람 몸에는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IgA라는 면역 물질이 있는데 이는 침에서 가장 많이 검출된다. 놀라운 것은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선한 일을 생각하거나 보기만 해도 신체 내에서 IgA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고, IgA를 만드는 신체 현상을 '20세기의 성녀, 테레사 수녀'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에서 착안하여 '테레사 효과'로 이름 지었다.

얼마 전에 만난 대학 선배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사는 30, 40대 모두가 고민해야 할 숙제를 좌중에 던졌다. "학교 다닐 적에 어느 교수님이 이렇게 가르치셨다. 20대에는 열심히 공부하면 돼. 그러나 적어도 30, 40대가 되면 재테크, 출세 이런 것들에 욕심내기보다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내 나이 마흔을 앞둔 지금 교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담고 살면서도 정작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어 부끄럽다."

필자는 문학 치료의 목표를 사회적 관심 증진에 둔다. 아동이든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상관없이 주로 하는 호소의 내용을 살펴보면 결국 이들의 행동이 사회와 융화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을 할 때 건강한 방식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타인을 돕고 약자들을 어루만질 줄 아는 건강한 에너지(사회적 관심)를 가진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주요 도구로 활용하는데 그 효과가 탁월함을 경험하고 있다.

더불어 사회적 관심이 높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성인은 성인대로 그런 책들을 보면서, 건강한 캐릭터들이 지닌 마음에 공명하고, 이는 곧 행동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이다. 그런 사람들의 침 속에는 IgA가 넘쳐나지 않을까.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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