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시대(상)-'장모님' 대신 '어머님' 자연스러워

입력 2009-08-25 08:42:11

육아 문제 등으로 처가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처가가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때문에 본가와 처가 사이에 낀 남성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여름 휴가철 한고비는 넘겼지만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서 남성들은 본가에서 얼마나 빨리 벗어나 처가로 향하는가 문제를 놓고 아내와 한판 기 싸움을 벌여야 할 판이다.

◆본가보다 가까운 처가

박모(35)씨는 2주 전 장인·장모를 모시고 2박 3일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부모님을 모시고 계곡이라도 다녀오자"는 박씨의 말에 아내가 "지금껏 아이 봐주느라 고생한 장인·장모는 부모님도 아니냐"며 맞받아쳤던 것. 박씨는 "내심 자주 오가는 처가보다 내 부모님을 챙기고 싶었지만 아내의 말에 더 이상 이야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명절 때는 제사 지내기가 무섭게 처가로 향해야 하고, 주말에는 처가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휴가까지 처가식구와 함께해야 하는 처지가 돼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푸념했다.

최모(34)씨는 요즘 호칭 문제로 어머니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최씨는 '장인, 장모님'이라는 호칭 대신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장인·장모가 권하기도 했고, 최씨 역시 자신의 부모님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어느 순간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진 것. 5세 난 아들 역시 외가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대신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구분이 필요할 때는 '상동 할머니' '경산 할머니'로 칭한다고 했다. 최씨의 어머니는 이 호칭을 못마땅해 한다. 최씨는 "친가와 외가의 구분이 엄연한데 왜 모두 그냥 할머니냐고 어머니가 역정을 내셔서 걱정"이라고 했다.

◆처가살이도 괜찮아

처가와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처가살이'를 하는 남성들도 늘고 있다. 황모(37)씨는 넉 달 전 처가로 이사를 했다. 맞벌이를 하느라 육아전쟁을 치렀던 아내가 마침 아파트 전세 만기가 돌아오자 "이참에 처가로 들어가 생활비도 아끼고, 육아부담도 덜면 어떠냐"고 제안했던 것. 이 때문에 황씨는 최근 불편한 처가살이에 매일 밤 술친구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기웃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황씨는 "한숨 덜었다고 환하게 웃는 아내를 보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처가살이를 시작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래도 아직 장인·장모와 매일 얼굴을 대하는 일이 쉽지 않아 가급적 늦게 들어갈 핑곗거리만 찾게 된다"고 했다.

'처가중심 시대'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이미 2003년 여성부가 전국의 남녀를 대상으로 가족가치관과 가족관계 등에 대해 조사한 결과도 부모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경우 아내의 부모(18.1%)가 남편의 부모(11.1%)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서적 지원의 경우도 남편 부모(3.7%)보다 아내 부모(12.1%)가 훨씬 높아 아내의 부모가 부부 생활에 적극 개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요즘 젊은이들은 좀 더 개방적이다. 올 초 한 구인구직 사이트가 처가살이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남학생의 63.3%가 '처가살이도 좋다'고 응답해 여학생들의 45.8%만이 '시집살이도 좋다'는 응답보다 비중이 컸다.

올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예비신랑 임모(33)씨는 "내 부모, 네 부모 따지지 않는 게 편안한 결혼생활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며 "처가에 잘하다 보면 여자친구 역시 내 부모님을 잘 챙겨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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