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이 좋다'는 것 세월 가면 알 겁니다
팔공산 자락 구암마을, 다해옻칠연구소 배종호(52)씨를 찾았다.
그의 작업실에는 물고기가 노니는 차탁(茶托)이 전시돼 있다. 250년 된 홍송에 물고기 모양의 자개를 넣어 마치 맑은 물 위를 노니는 물고기떼를 보는 듯하다. 그 옆에는 자개로 찔레꽃이 아로새겨진 차탁도 있다. 물결무늬의 나무결을 따라 찔레꽃이 동동 떠가고 있는 모습이다. 어디선가 찔레꽃 향기가 나는 듯하다. 마침 그의 작업실에는 경주 최부잣집 툇마루로 짠 좌탁이 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옻칠을 한 잘 생긴 오동나무 쌀단지도 한쪽에 쌓여있다.
배씨는 중학교 1학년, '배가 고파서' 목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가난해서 도시락을 못 싸다녔어요. 자존심 상해서 부모님 몰래 기술을 배우러 다녔죠."
그렇게 목공예의 길로 접어든 그는 나전칠기, 옻칠을 배웠다. 처음 선배들 담배꽁초 줍고 작업복 빨고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해 전국을 다니며 일 잘하는 사람들과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지금 나전칠기기능협회 회장, 문화재 보수칠공 기능장을 맡고 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1987년 대구에 정착하고 8년 전 구암마을에 터를 잡았다.
작업실을 나서면 이내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300여 포기의 야생화는 배씨 부부가 애지중지 키우는 것들이다. 씨를 받아 산에 뿌리기도 하고 야생화를 사랑하는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15년째 전통차도 즐기고 있다.
그의 관심사는 '우리 것'으로 관통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것이 좋은 것'이란 말이 뭔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거죠."
28살에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 배를 탔다. 4년 넘게 세계를 여행하며 문화와 공예를 공부했다. 아프리카에서 까만 하느님을, 남미에서 인디오 하느님을 보며 감동받았다.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요즘 이곳을 떠날까 궁리 중이다. 목공예가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위기감을 지나 허탈감마저 느끼고 있는 듯했다.
"10년 후 다시 한 번 숭례문에 불이 난다면, 그 땐 누가 복원할 수 있을까요. 중국'일본에서 기술자를 불러와야 할지도 몰라요."
정부와 대구시는 이들을 나몰라라 하고 있다. 부자들은 거금을 들여 '이탈리아제' 가구만 사모은다. 돈이 안되니, 대학에서도 목공예과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과연 누가 전통기술을 이을 것인가.
"요즘 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남대문이 비싸냐, 내가 비싸냐'고. 당연히 제가 비싸다고 생각해요. 그런 문화재를 만들 수도 있고 고칠 수도 있으니까요. 정부와 대구시는 유형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전통 기술을 가진 기술자들에게 눈을 돌려야 해요."
문화재급 장인들이 과자 만드는 공장에서 기계를 손보는 모습을 보면 더없이 가슴 아프다. 우리 기술자들의 몰락을 지켜보며 일본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일본은 나전칠기, 옻칠 기술이 뛰어나요. '언제든 오라'며 러브콜을 보내죠. 이제 친환경가구를 사려면 일본제를 사야할걸요. 일본은 그만큼 전통 기술의 가치를 알고 보존, 개발해요."
그의 작업실에선 옻칠을 한 치마장, 저고리장, 아기장을 구경할 수 있다. 전통옻칠을 한 가구는 멸균효과가 있어 좀이 슬지 않는다. 특히 아기장은 문이 이중으로 만들어진데다 옻칠까지 해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에게 좋다.
공예는 땀과 시간에 비례한다. 그의 목표는 로마 입성이다. "바티칸에서 제 작품을 앞에 두고 미사를 드리고 싶어요. 그게 저의 마지막 꿈입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