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人)]경주 맷돌순두부 대표 이갑채씨

입력 2009-08-20 14:25:52

천년고도 맛의 대표, 향토 음식타운 만들터

경주가 '천년고도'라는 인식 때문에 관광객들은 경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정작 '이것이다'할 정도의 경주 먹을거리를 찾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경주 맷돌순두부 대표 이갑채(56) 회장은 경주의 맛을 찾아 낸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관광지인 경주 보문단지 입구에는 먹을거리촌이 형성돼 있다. 보문 하면, 당연히 호텔과 콘도가 가득 들어찬 관광지로 인식되고 관광객들은 이곳의 한 끼 식사값이 비쌀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다.

이 회장은 이런 관광객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저렴하면서도 한 끼 식사로는 훌륭한 순두부백반을 만들어 냈다.

"과거 관광객들을 '뜨내기손님'이라고 해서 상인들이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식의 영업은 안 통합니다. 자신은 물론 경주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은 올해 한국음식업중앙회 경북지회 경주시지부장에 선임됐다. 지난해까지 전임 회장의 잔여임기를 맡았으니 4년째 경주 음식업의 총책임자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그는 "허투루 음식을 팔아서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을 따라갈 수가 없다"며 "한 사람의 손님에게 내놓는 음식 한 그릇에도 장인의 혼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 지역 사람이 아니다. 전남 화순에서 나고 자랐다. 그곳에서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다 보내고 그 시절 모두 그렇듯이 가난한 집안에서 입 하나 덜기 위해 형님의 말을 듣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제가 음식업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형님의 영향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던 저에게 당시에 인기가 있던 일식요리를 배워보라고 해서 조리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는 있다고 들어온터라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 회장은 부지런히 일식 조리기술을 연마, 조리사 자격을 따냈다. 일식집을 하던 형님의 주방 보조로 들어가 제법 이 바닥에서 인기를 얻고 그를 찾는 손님도 부쩍 늘어났다. 부인 김금자(58)씨와 결혼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이런 이 회장의 솜씨를 눈여겨 보던 선배가 경주 코오롱호텔을 소개하면서 경주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때가 1978년. 당시 조선호텔(현 코모도호텔) 등 최고 권위의 호텔 주방장을 거치면서 승승장구하면서 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더 늦기 전에 제 사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릴 적 처음 서울로 상경할 때 꿈이 제가 경영하는 최고급 일식집을 마련하는 것이 소원이었으니까요. 맛을 내는 데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안정된 호텔 주방장이란 직업을 박차고 나왔다. 항상 그랬지만 자신감은 넘쳤다. 마침내 경주시내에 일식집을 차렸다.

그가 얻어온 명성처럼 큰 돈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영업은 잘 됐다. 그러나 보문에 분점을 낸 것이 화근이었다. 골프장 등 레저시설이 많은 보문을 찾는 사람들은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값비싼 일식집을 차린 게 오판. 단체로 움직이는 관광객들에게는 싼값의 알찬 음식이 더 반응이 좋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당시 비브리오균과 콜레라균이 유행하면서 그나마 잘 되던 시내의 식당들도 흔들렸다.

고민끝에 우연히 들렀던 강원도 여행길에 접한 순두부 음식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이 회장은 "당시 순두부 요리는 흔한 음식이었지만 요리 아이템을 찾아 골몰하던 저에게는 '꽝'소리가 울릴 만큼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그래 경주식 순두부집을 운영하는 거야." 여행 내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경주에 돌아온 그는 일식집을 미련없이 정리하고 그 자리에 순두부집을 차렸다. 일단 순두부에 맵고 짠 경상도의 강한 맛을 추가하고, 돼지와 소고기 대신 경주 청정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을 듬뿍 넣었다.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관광객들은 맛에 놀라고 가격에 비해 푸짐한 상차림에 한번 더 놀랐다. '관광지=바가지'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던 관광객들은 맛과 정성이 담긴 음식 앞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 일색이었다. '제주도 갈치회=경주 순두부'라는 등식이 생긴 것도 이때였다.

"순두부가 특별한 음식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손님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손님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음식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요즘 맷돌순두부를 찾는 손님은 하루평균 700명~1천여명선. 하루매출이 경주의 명품브랜드인 황남빵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받은만큼 돌려 드려야지요."

최근 이 회장은 경주신라라이온스클럽회장, 바르게살기경주시협회부회장, 경주시농구협회장 등을 맡아 봉사활동과 향토체육 발전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경주시농구협회장을 맡아 엘리트 체육 발전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열정으로 농구 불모지였던 경주가 경북도민체전에서 지난해 종합우승, 올해는 종합 2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2003년 경주에서 열린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의 농구경기를 총괄하면서 외국 대학생들에게 한국의 인심도 알렸다.

"우리나라 최고 관광지인 보문에 경주음식을 대표할 수 있는 토속적인 향토 음식타운을 건설하고 싶습니다."

이순을 앞둔 나이에 인생역전을 이뤄낸 이 회장은 '향토음식타운'이란 '인생 제 2막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경주'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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