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매일 낭떠러지 사이를 걷는 외줄타기와 같다. 함정이 즐비한, 흔들리는 허공에서 중심을 잃으면 추락하는 아픔을 겪는다. 매일 타는 밧줄에 무슨 두려움이 있을까. 더러는 방심이, 때로는 자만이 한순간 발을 헛딛게 할 뿐이다. 갑작스런 부도로 단란했던 한 가족이 떨어져 살거나 불의의 사고로 평생의 짐을 안게 되는 경우도 다 순간의 자만과 방심과 안주의 부산물이다. 야구도 인생처럼 잘 나갈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 되어 스스로를 시험에 들게 한다.
2004년 이승엽이 떠난 삼성 라이온즈의 미래는 온통 배영수에 달려 있었다. 그해 17승으로 MVP에 오른 배영수는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10이닝 노히트노런의 역투를 보였고 삼성의 새로운 주역으로 이승엽이 받던 갈채의 바통을 단숨에 넘겨받았다. 그 후 2년간 마운드의 주춧돌로 연속 우승의 수훈을 세우며 대형 투수의 대열에 드는 듯 보이기도 했지만 승수만큼 많았던 패수는 그늘 속의 그림자처럼 추락의 징조를 조금씩 드리우고 있었다.
결국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팔꿈치 속의 뼈조각은 표면으로 드러났다. 7개의 뼈조각 제거와 함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배영수는 이후 일년을 꼬박 재활훈련으로 보내야 했고 지난해 9승8패의 성적으로 절치부심의 흔적을 보였지만 올해 볼끝 위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결국 1승12패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할 지경에 이르렀다. 배영수는 정말 이대로 침몰하고 있는 것일까?
2004년 배영수가 최고의 에이스로 떠오른 시기에 임창용도 마무리 투수로 나서 36세이브로 최다 기록을 경신하며 배영수를 한껏 견인했다. 그러나 추락의 시련은 이듬해 임창용에게 먼저 찾아왔다. FA가 되었지만 활약은 저조했고 결국 팔꿈치 부상으로 배영수와 같은 인대 접합수술을 받아 역시 1년을 재활훈련에 매달려야 했다. 2007년 우여곡절 끝에 통산 100승을 달성했지만 5승에 그쳤고 FA 이후 3년간 11승15패6세이브가 전부였다. 모두 임창용은 이제 한물간 선수로 여겼고 삼성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스스로를 시험에 들게 한 것이었다. 수술은 사람을 위축되고 조심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임창용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을 오히려 더 큰 무대로 던지며 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으로 스스로를 밀어넣었다. 그 도전은 마침내 그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의 투지와 용기가 새로운 인대를 더 싱싱하게 팔꿈치에서 자리잡게 하고야 만 것이었다.
2007년 12월26일 미국에서 수술을 끝내고 귀국한 배영수는 수술이 잘 되었다며 100마일(160km) 투수가 되고 싶다고 인터뷰했다. 그 꿈은 이루어졌다. 다만 주인공이 임창용이었을 뿐. 가난했던 배영수는 성공을 위해 야구를 택했고 노력과 근성으로 최고의 자리에도 올랐었다. 큰 둑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배영수에게 필요한 것은 더 높은 곳의 밧줄을 타는, 진정한 용기다.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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