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다운 교토 만들기' 행정 당국·시민 한마음
일본인들은 교토(京都)를 '마음의 고향'으로 여긴다. 서기 794년부터 1868년까지 1천100년 동안 일본의 심장부 역할을 해온 데다 가장 일본다운 기품이 남아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눈에는 그렇게 멋져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뛰어난 문화유적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장중하거나 화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세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최첨단 도시도 아닌 발전이 더딘 것 같은, 다소 어정쩡한 도시로 비쳐진다.
그러나 교토의 천년 역사는 그런 겉보기에 있지 않다. 골목길, 거리, 주택, 가게 같은 전체적인 조화속에 교토의 힘이 숨어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특유의 전통가옥과 고풍스러운 목조가게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속에서 전통의 멋과 운치가 묻어난다. 그런 멋과 운치가 쉽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들이 어떻게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철저한 규제 정책
교토가 내세우고 있는 도시정책 슬로건은 '교토가 언제까지나 교토로 남아있기 위하여…'였다. 쉬운 말인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대단히 어려운 내용이다. 요즘 사회에서 옛날에 살던대로 살라고 한다면 그게 쉽겠는가.
교토는 현대화된 인구 147만명의 대도시다. 그 때문에 시민들의 개발욕구가 높을 수밖에 없다. 높은 건물을 세우고 싶어하고 오래된 목조가옥을 부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버블경제'로 부동산 투자가 늘어나면서 전통 가옥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 개발행위가 잇따랐다. 이로 인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경관이 서서히 무너져갔다.
그러자 교토부청은 교토다운 경관을 되찾기 위해 관련 조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기 시작했다. 95년에는 시가지경관 정비조례를 제정하고 96년에는 경관규제지역 확대, 옥외광고물 규제강화, 높이 규제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교토부청 건설교통부 도로관리과 나오야 하타(46·八田直哉)씨는 "교토가 50년, 100년 후에도 계속 빛날 수 있으려면 도시 경관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했다"며 "시민, 의회, 공무원들이 오랜 시간 토론과 합의를 거쳐 교토다운 경관정책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2007년 9월부터 가장 강력한 경관조례가 시행됐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규제의 강도가 세고 꼼꼼했다. 고층건물을 아예 없애겠다는 각오인 듯 고도규정을 강화했다. 상업·업무 중심지인 도심부의 건축물은 일정 높이를 인정하고 역사적인 시가지(10~12m), 산기슭의 주택지(15~25m), 공업지역(31m)으로 나눠 고도 제한을 더 강화했다.
문화유산이 많은 구도심의 '역사적 시가지' 경우 간선도로변은 31m를 넘을 수 없게 했고 직주(職住)공존지구는 15m로 낮췄다. 이로써 교토부 시가(市街)지역의 30% 정도가 강화된 고도 제한을 받게 됐다. 기존 건물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높은 건물을 짓지 말라는 의미다. 앞으로도 계속 고도규정을 강화할 경우 50년, 100년 후면 교토에는 높은 건물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교토부청 공무원들의 설명이다.
건물 디자인도 규제를 받기는 마찬가지. 디자인은 공통기준과 지구별 기준으로 나눠 지붕의 색채, 외벽의 소재, 발코니, 외벽의 색채 등에서 기준을 따르도록 돼 있다. 지붕의 경우 기와는 원칙적으로 그을린 은색을 사용하고 동판은 녹청색을 쓰며 금속판 및 기타 재료는 광택이 없는 짙은 회색이나 검정을 쓰도록 했다. 주요한 외벽에 사용하는 재료는 광택이 없는 것을 써야 하며 발코니는 건물의 벽에서 튀어나오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나오야 하타씨는 "지금까지 시행착오를 거듭한 경험과 각계의 제안들을 바탕으로 디자인 기준을 계속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규제의 백미는 간판
교토 상점가를 둘러보면 간판 크기가 아주 작다는걸 금방 느낀다. 제법 큰 음식점이라도 길이 1m가 넘는 간판은 아예 없다. 가게 면적에 따라 간판 크기가 규정돼 있지만 10~20cm정도 차이에 불과해 대개 비슷한 크기로 보인다. 세계문화유산인 토지(東寺)를 보고 나오는데 200m의 골목길에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는 가게들의 간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정말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규정에 맞춰 천편일률적으로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상호를 표시해놓았다. 대구 시내에서 휘황찬란한 색깔의 큼직한 간판을 보다가 왜소한 듯한 자그마한 간판을 보니 신기했다.
물론 이동식 간판이나 불빛이 반짝거리는 점멸식 간판도 금지돼 있다. 한국에서는 대로변이면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현란한 옥상 광고탑도 없다. 대구시가 2011년 세계육상대회를 위해 간판 정비에 나서기로 했지만 상인들의 반발로 주춤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교토는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교토 상점가의 간판을 보면서 대구 공무원과 상인들을 견학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토 상인들도 간판을 바꾸고 없애는 일을 달가워했을리 없겠지만 묵묵히 정책을 따라줬다. 그것이 바로 교토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교토 시민들은 이런 정책에 대해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들도 불만이 많고 부청에 민원을 곧잘 제기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국과 같은 집단 시위, 항의 방문 같은 집단적 반발은 없다. 교토부립종합자료관 관장 이구치 카주키(井口和起)씨는 "간판규제 문제를 놓고 상인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등 시행 전부터 다소 시끄러웠다"면서도 "그러나 각계각층의 토론과 협의를 통한 결과물인데다 교토를 보존하고 지키려는 열망이 강해 큰 말썽없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강력하게 규제를 하는 행정당국과 이를 묵묵히 따르는 시민들이 조화를 이뤄 일본다운 교토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젊은 여성 '마이코 광광' 인기 … 옛 게이샤 추억 유곽들도 많아
교토에서는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을 원없이 보게 된다. 특별한 명절이나 기념일이 아닌데도 기모노를 외출복으로 입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교토가 기모노 산업의 중심지라 그런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일본인들은 전통을 소중하게 여긴다. 일본 여성들은 어머니에게서 기모노를 물려받고 딸에게 자신의 기모노를 물려준다.
유명 관광지인 기요미즈데라(淸水寺)로 가는 길에 기모노를 입고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한 한무리의 여성들과 만났다. 나막신을 신고 종종 걸음을 옮기는 이들은 마이코(舞妓) 분장을 한 관광객들이었다. 마이코는 기생인 게이샤(藝者)가 되기 전의 연습생을 말한다. 오사카에서 친구 3명과 함께 왔다는 하루카(28)씨는 마이코 관광을 위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왔다고 했다. "마이코 분장을 하기 위해 기다릴 때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가슴이 벅찼어요.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이들은 1시간여동안 전통가옥, 절, 인력거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면 9천엔(약 12만원)이고 야외촬영을 하면 2만엔(약 26만원) 정도가 든다.
교토 동쪽 지온(祇園)거리에는 옛모습을 간직한 기념품점, 골동품점, 음식점 등이 즐비한데 아직도 전통 유곽이 10여개 남아있다. 해가 지고 유곽에 등이 하나 둘 켜지면 게이샤나 마이코의 모습도 보인다. 그렇지만 돈이 많다고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술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단골 손님의 추천이 없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다. 유명 기업인이나 정치가, 프로야구선수들만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이곳에 드나들고 싶어 이를 악물고 야구를 시작, 유명 프로야구선수가 돼 결국 소원을 이룬다는 영화까지 있다. 이런 전통은 좋은 것인가, 좋지않은 것인가.
글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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