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부친에 간 떼준 현대판 심청 19살 지현씨

입력 2009-08-17 09:39:49

감동 사연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딸이…."

13일 만난 권영환(50·대구시 달서구 본리동)씨는 눈가가 젖어 있었다. 권씨는 수년 전 찍은 가족 사진을 꺼냈다.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지금 권씨의 몸무게는 48㎏, 사진을 찍을 당시와 비교하면 무려 23㎏이나 빠졌다. 막 50대에 접어든 권씨의 얼굴은 주름이 가득한 60대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그에게 새 삶을 선물한 건 막내딸 지현(19)씨다. 그의 몸속에는 막내딸의 간이 생명을 이어주고 있다. 지난달 21일 권씨는 딸의 간 대부분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14시간에 걸친 생명을 담보로 한 대수술이었다. "수술대에 나란히 누워 딸이 말하더군요. '아빠가 주신 생명을 제가 조금 돌려드리는 거예요. 부담 갖지 말고 받으세요'라고."

권씨가 간경변 판정을 받은 건 지난해 4월이었다. 갑자기 배가 아파 응급실을 찾았다가 'B형 만성간염에 복수를 동반한 간경변 중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보디빌딩 생활체육지도자로 헬스클럽을 운영했던 그에겐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나아질 것이라 믿었지만 병은 악화됐다. 결국 지난 4월 간암 판정을 받았고 이식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의사의 얘기를 들었다.

지난 5월 장기이식센터에 이식희망자로 등록했지만 언제 장기를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 더구나 굳어진 간으로 인해 정맥류까지 생기면서 시한부 인생이 됐다. "그냥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버텨볼 생각이었어요. 간 이식은 생각도 못했죠." 그때 지현씨가 아버지를 살리겠다며 나섰다. 두 딸이 모두 나섰지만 간의 무게가 권씨와 비슷한 지현씨가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권씨는 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수술로 인해 받을 고통과 평생 큰 흉터를 안고 살 딸의 모습이 아른거린 탓이다. 지현씨는 "수술 후 배를 가로지른 수술 자국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아빠가 나날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두 부녀가 완전히 회복되려면 적어도 1년은 걸린다. 건강을 되찾으면 둘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여행'이다. "예전부터 아빠랑 주말 여행을 많이 다녔거든요. 특히 낚시를 함께 가고 싶어요." 권씨는 지금까지 해오던 사회봉사활동을 더 열심히 할 계획도 세웠다. 권씨는 지난해까지 해병대 대구시연합회전우회에서 환경감시단장으로 일하며 대구시장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주변에서 참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사회복지학을 공부할 생각입니다." 함께 건강을 되찾고 있는 부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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