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땐 병원 실려갈 정도로 일했죠"

입력 2009-08-17 07:00:00

한흥식 일식점 '동경' 대표

경북 구미 무을면이 고향인 스무 살 청년은 1972년 호주머니에 돈 한 푼 없이 상경했다. 시장 바닥을 누비며 잡히는 대로 일했다. 공장에서 재봉틀 일도 배웠다. 짐을 날랐고, 이곳저곳 잔심부름을 했다. 그는 "옛날에는 다 그렇게 일했다"고 했다.

지하철 서울역 10번 출구 앞 일식점 '동경' 한흥식(57) 사장. 밑바닥부터 헤맨 그는 이제 이곳뿐만 아니라 용산 GS빌딩과 대우빌딩 등 땅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곳에서 또 다른 일식전문점 '동경수사'와 우동전문점을 준비 중이다.

한 사장은 "참 오랜만에 옛일을 돌아본다"고 했다. 시장과 공사장 잡일꾼으로 일하다 1988년 동대문구 장안동 중고자동차매매시장 인근에 첫 분식점을 마련했다. 음식값으로 받는 돈보다 떼먹히는 돈이 더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땐 깡패소굴 속으로 뛰어든 셈이었죠"라고 그가 웃었다.

그 후 한 사장은 지금은 해체된 한일그룹 빌딩 지하에 33㎡(11평)짜리 일식점을 창업했다. 오다가다 만난 일본인 요리사로부터 생선회며 초밥을 배운 터였다. 3년 만에 대박이 났다. 한 사장은 "초밥 2개를 크게 말고, 국 한그릇을 담아 1천원에 도시락으로 팔았다"며 "임원회의가 있는 아침 6시만 되면 400개씩 동났다"고 했다. 소문이 나자 도시락은 쌓는 대로 사라졌다. 부인 김명자(52)씨와 그렇게 3년을 보냈다. 결국 부부는 동시에 병원으로 실려갔다. "늑막염과 담석, 3개월의 요양이 꼭 필요하다"는 의사 진단이 나왔다. 부부는 식당을 인계할 새도 없이 셔터만 내린 채 병원에서 살았다.

"젊을 때니까 잠이 뭔 필요가 있나 했지요. 재미도 쏠쏠했고요. 그땐 정말 대단했던 것 같아요." 한 사장은 아내를 보며 말했다. 그 뒤 '장사의 노하우'가 텄다. 상권을 잡아내는 눈이 생겼다. 많이 주되 적게 받는 단골 확보법도 터득했다. 경기도 양평에 1만6천500㎡(5천평)의 농장을 마련해 신선한 채소를 공수했다. 입소문이 났다. 사람이 모이니 돈이 불어났다.

한 사장은 이미 고향에서 유명 인물이다. 친척과 함께 장학재단을 만들어 아이들을 돕고 있다. 자신이 필요한 일이면 슬그머니 나선다. 절대 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답답할 만큼 겸손했다. 한 사장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가시고 고향은 곧 아버지와 같다"고 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