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백화점 청과 바이어 백호영(38) 과장은 14년간의 백화점 청과 바이어 생활 동안 올해 여름만큼 힘든 시절이 없었다. 어지간한 어려움은 다 겪어 봤지만 올해는 정말 잠이 오지 않을 만큼 힘들다는 것. 바로 여름 같지 않은 날씨 때문이다.
백 과장은 올여름처럼 햇볕이 없고 흐린 날씨와 비가 계속되는 여름은 구경한 적이 없다고 했다.
청과 바이어의 걱정이 큰 것은 당연하다. 일조량이 떨어지면 자연스레 과일의 당도가 급감하는 것. 더욱이 날씨가 시원해지면서 소비까지 줄어 상품이 제 가격을 받기 힘들다.
올해 수박과 복숭아의 판매는 전년의 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수박과 복숭아는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아야 당도가 좋은데 올해는 날씨 영향으로 그렇지 못한 것.
그는 새벽 3시부터 산지에 직접 가고, 대구권 최대 청과물 유통시장인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칠성시장 등을 누벼도 좀처럼 당도가 높은 수박과 복숭아를 발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밥은 덜 먹어도 과일은 떼놓고 살 수 없는 시대인 만큼 '시즌 과일'인 수박과 복숭아를 대체할 상품을 찾기 위해 그는 뛰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올해 포도와 사과, 하우스 밀감은 당도가 뛰어나다는 것. 품질 좋은 물건들을 많이 구해온 덕분에 예상외로 전년보다 더 큰 매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여름 궂은 날씨에도 불구, 이들 과일의 맛이 좋은 것은 하우스를 이용한 재배가 많아 비로 인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거봉과 포도, 밀감은 당도가 뛰어나고 품질도 매우 좋아 매출이 급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백 과장은 청과 바이어의 노동량이 얼마인지에 따라 상품이 달라진다고 했다. 열심히 뛴 만큼 좋은 물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아무리 궂은 날씨가 찾아와도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잠을 쫓고 산지로, 시장으로 달려간다.
"성주 참외 등이 나오는 4월 말부터 추석까지 청과 바이어는 정말 쉴 틈이 없습니다. 이 무렵 각 유통업체 바이어들은 좀 더 달고, 맛있는 과일을 찾기 위해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죠. 과일은 달지 않으면 아예 사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품질 좋은 과일을 찾기 위해서는 어디라도 가야 합니다."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지 농민과의 유대관계가 더 중요하다. 믿음을 줘야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입안을 상큼하고 시원하게 만드는 과일에는 많은 수고가 녹아 있습니다. 농민들에게는 자식 같은 존재죠. 1년여 동안 농민들이 정성껏 재배한 '제대로 된' 과일을 발견해 매장으로 가져온 뒤 너무 잘 팔려 추가 상품 발주가 들어오면 쌓였던 피로가 확 풀립니다. 앞으로는 날씨가 좋아져 더 맛있는 과일들이 많이 나오면서 농민·소비자 모두 즐거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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