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전시회 여는 오지탐험 작가 박종우

입력 2009-08-15 07:00:00

히말라야 3천㎞, 내 영혼은 이 雪山에 숨 쉰다

해발 4천~5천m 고지대에서 히말라야 설산을 촬영하고 있는 박종우 대표.
해발 4천~5천m 고지대에서 히말라야 설산을 촬영하고 있는 박종우 대표.
차마고도에서 만난 티베트인들. 눈빛이 강렬하다.
차마고도에서 만난 티베트인들. 눈빛이 강렬하다.
차마고도의 한 마을에는 400~500명이 살고 있다. 전경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차마고도의 한 마을에는 400~500명이 살고 있다. 전경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박종우 대표가 대구 전시회를 앞두고 호텔 인터불고엑스코 아르토갤러리에서 자신의 사진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박종우 대표가 대구 전시회를 앞두고 호텔 인터불고엑스코 아르토갤러리에서 자신의 사진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차마고도(茶馬高道 차카롱 지역에서 50m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손에는 1억원 상당의 HD(High Definition) ENG(Electronic News Gathering) 고성능 카메라를 들고 있었습니다. 절벽 좁은 경사로에서 촬영 중이었는데 야크가 짊어진 소금짐에 밀려 떨어졌죠.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차마고도에는 저를 보호하는 신이 있었나봐요. 47m를 떨어지고 나머지 3m지점에서 나무에 걸려 카메라가 일부 파손되고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찰과상만 입었습니다. 딱 3년 전 사고였습니다."

오지탐험 작가인 다큐멘터리 프로덕션 '인디비전'의 박종우(51) 대표. 그는 1천일 이상 차마고도에 머무르면서 촬영을 하다 큰 사고를 당했던 때를 회고했다. 해발고도 4천~6천m에 이르는 신비의 땅을 촬영하다 보니 때론 넋을 잃고 카메라를 돌리다 이런 변도 당하는 것. 그가 사고를 당한 곳도 캐러밴(Caravan)들이 다니는 절벽에 난 좁은 길이다.

하지만 이런 위험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에게는 이 일이 천직인 듯했다. 이 때문에 10여년간 잘나가던 일간지 사진기자의 일도 미련 없이 뿌리치고 오지로 향했다. 365일 중 200일 이상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고된 생활을 하지만 그에겐 더 이상의 즐거움은 없는 듯했다.

박 대표는 "야생에 살다시피하는 그곳 생활이 불편하기로는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지만, 이젠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자연을 접하다 보면 그 신비로움에 감탄하게 되고, 결국 또 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어렵게 촬영한 차마고도 촬영분을 2007년과 2008년 두차례 지상파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또 남은 2부작을 완성시켜 내년쯤 시청자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이번 달 13일부터 다음달 말까지는 호텔 인터불고엑스코 예술공간 아르토갤러리에서 차마고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전시한다. 사전전 준비를 위해 대구를 찾은 박 대표를 이달 7일 만났다. 그가 찍은 사진과 설명을 통해 차마고도의 아름다운 세계를 살짝 엿보았다. 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이 오지탐험 작가가 얼마나 행복한지도.

◆마약 같은 히말라야와 차마고도

박 대표는 22년 전 우연한 기회에 친구들과 함께 히말라야 설산(雪山)을 구경갔다 필(Feel)이 제대로 꽂혔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촬영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신문사를 박차고 나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1986년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가 1988년 올림픽 취재 때문에 잠시 들어간 것이 또 8년이라는 세월을 잡아먹었다. 그가 신문사 사진기자를 완전히 그만둔 것은 1995년.

그는 이왕 생업으로 삼던 사진기자를 그만둔 이상 그때부터 세계 오지를 탐험하며 그 지역의 생활상과 풍경을 사진과 영상에 담는 일을 주업으로 삼아야했다. 하지만 스폰서를 얻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나마 신문사 기자 시절 인맥으로 도움을 받고 자비를 털어, 남들이 쉽게 가보지 못하는 히말라야와 티베트 차마고도를 비롯해 동유럽 국가, 남미 안데스산맥, 앙코르와트 등을 여행했다.

많은 오지여행을 통해 박 대표의 주전공이 정해졌다. 바로 '히말라야와 차마고도'. 이번 대구 전시회 제목도 '히말라야 20년의 오디세이'다.

"1987년 처음 히말라야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20여년간 히말라야 서쪽 끝,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로부터 미얀마와 중국 윈난성 국경에 이르는 장장 3천여km의 히말라야 전 구간을 수십회에 걸쳐 촬영했습니다. 히말라야의 자연뿐만 아니라 히말라야 산맥 주변에 살아가는 각 나라의 사람들과 변화해가는 민족문화와 전통 등을 다양한 시각으로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는 히말라야 대자연의 원초적 아름다움부터 그곳 사람들의 얼굴, 특히 뭔가를 갈구하는 듯한 눈을 중심으로 한 인물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곳 사람들의 눈동자가 살아있었습니다. 그 눈망울에 쏙 빠질 듯 아름다우며, 자연 속 그대로를 담고 있는 듯해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이번 전시회 사진 역시 티베트 전역에서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순례자들, 2006년 칭짱철도의 개통식 때문에 눈물 속에 열린 마지막 차마고도 마방(馬房)의 해단식, 눈부시도록 푸른 하늘을 가득 담은 옥색의 호수, 화려한 전통의상을 걸친 산악 민족의 모습, 히말라야를 넘는 캐러밴 등 빠른 변화 속에서 강인한 생명줄처럼 지속되고 있는 산악 민족의 삶을 뜨거운 애정으로 렌즈에 담아냈다.

◆차마고도 촬영 이후 또 다른 오지여행

"내년에 차마고도 6부작이 완성되면 또 다른 여행에 나설 계획입니다. 남미 칠레 해안에서 서쪽으로 3천760km가 떨어진 이스터 섬 도 좋고, 극지탐험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변 여건은 녹록지 않다. 차마고도 촬영 때는 한국방송콘텐츠진흥재단 등의 지원으로 사비를 털 정도는 아니었다. 또 영상물을 방송사에 판 돈까지 생겨 제법 살 만했다. 이제는 이 지원마저도 대폭 줄어들어 맘놓고 오지 촬영계획을 잡기도 쉽지 않은 여건이다. 그렇다고 대기업 등에서 쉽게 지원에 나서지도 않는다.

박 대표는 히말라야에 있을 당시 한국의 대표 산악인 엄홍길, 박영석 등반대의 동영상을 촬영해주고 소정의 돈을 받기도 했다. 그는 6천500m 정도 높이까지만 영상을 제작하고, 나머지 정상 정복 등은 함께 등반하는 촬영담당 대원에게 가르쳐줬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의 두 거목 산악인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두 거목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산악인 한왕용씨도 그들에 버금갈 만큼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그의 오지 방랑벽은 가족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사인 부인은 이제 체념한 듯 집을 비우는 남편의 삶을 받아들이고 있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벌써 아버지를 따라 50개국 이상을 다닌 덕에 이제 국내에서 웬만한 곳을 가도 '에이, 이게 뭐야'라며 실망할 정도이다. 그는 가족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로부터 받은 명함의 이메일 아이디는 'gangdo'였다. "왜 하필 강도냐"고 하니, "그냥 재미있잖아요. 별다른 의미는 없고요"라고 했다. 싱거운 그의 표정에서 삶의 구도자 같은 모습도 엿보였다. 역설 같은 대답이었다. '왜 차마고도를 가느냐'고 물어도 같은 답이 날아올 것 같았다. 그의 대답 속엔 소탈한 성격도 묻어나왔다.

다큐멘터리 비디오 작업도 병행하는 박 대표는 '티베트 소금계곡의 마지막 마방' '차마고도 1천일의 기록' '사향지로' 등을 공중파 방송을 통해 내보냈다. 또 프랑스 ARTE-TV를 통해 '최후의 소금 캐러밴'(LA Deniere Caravan de Sal)을 내보내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용어설명

차마고도(茶馬高道)-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교환하기 위해 개통된 교역로로, 중국과 티베트-네팔-인도를 잇는 육상 무역로. 해발 4천m가 넘는 험준한 길과 눈 덮인 5천m 이상의 설산이 아찔한 협곡이다.

캐러밴(Caravan)-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 통상이나 성지순례 등을 겸해 무리를 이루어 여행하는 상인.

오체투지(五體投地)-불교의 절하는 법의 한 가지로, 먼저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다음에 두 팔을 땅에 대고 그 다음에 머리를 땅에 대어 절하는 것.

마방(馬房)-말이나 야크 등을 두고 삯짐을 싣는 일로 영업을 하는 곳.

이스터섬(Easter Island)-남태평양 동부에 있는 섬. 면적 117㎢. 파스쿠아섬 또는 라파누이섬이라고도 한다. 원주민이 남긴 '모아이'라고 하는 거대한 석상으로 유명한 섬.

※박종우는? 1958년 서울 용산 출생. 창서초교, 숭문중·고,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영상매체전공 석사, 중국 북경 중화소수민족대학 박사. 한국일보 사진기자 및 순회특파원 역임. 프리랜서 사진작가 및 영상작가. 다큐멘터리 프로덕션 '인디비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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