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으로 충분한데 연애를 꼭 해야 돼?
직장인 이모(35)씨는 180㎝가 넘는 훤칠한 키에다 항상 깔끔한 복장 덕분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꽃미남'이란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좋은 조건을 가졌음에도 여자친구가 없다. 본인 스스로도 연애에 별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사는 여성들이 주로 좋아하는 뷰티와 패션 분야다. 수시로 인터넷을 통해 화장품이나 패션 관련 정보를 얻고 쇼핑몰을 통해 구매도 자주 한다. 퇴근 후에는 1주일에 3차례 요리학원을 찾아 요리를 배운다. 집 근처 피부관리숍을 찾아 주기적인 피부관리도 빼놓지 않는다. 이씨는 "자기관리에 월급의 절반 이상을 투자한다"며 "단지 관심 분야가 다른데 주위에서 색안경을 끼고 볼 때는 기분이 언짢다"고 말했다.
최근 과거의 남성상과 여성상을 거부하는 '신인류'가 회자되고 있다.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그것이다. 이런 유형의 미혼남녀들이 급속도로 늘면서 관련업계의 마케팅도 활발하다.
◆초식남'건어물녀 뭐기에?
이씨와 같은 남자들을 최근 초식남이라고 부른다. 초식남(草食男'초식계 남자의 줄임말)은 초식계 동물처럼 공격적이지 않고 온순하며 자기애가 강한 남성을 일컫는 신조어다. 남자다움을 내세우는 남성상(육식남)과 상반되는 개념이다. 2006년 일본의 여성 칼럼니스트 '후가사와 마키'가 처음 사용한 이래 하나의 인간형으로 굳어졌다.
이들은 이종격투기나 축구 같은 남성적인 스포츠 대신 패션이나 뷰티 등에 관심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주위 여성을 연애 대상이 아닌 친구로 여긴다. 현재 방영 중인 KBS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에 등장하는 주인공 지진희(조재희) 같은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건어물녀'는 2007년 7월부터 일본에서 방송된 인기드라마 '호타루의 빛'에서 나왔다. 사회생활에 지쳐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이 건어물처럼 완전히 말라버린 여성을 빗대는 말로 직장에서는 반듯하게 차려입고 다니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후줄그레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맥주와 오징어를 먹으면서 드라마에 열광하며 잠만 자는 이른바 '망가진 캐릭터'다. 초식남이나 건어물녀의 공통점은 결혼 적령이 가득 찬 싱글이지만 연애나 결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타깃마케팅 '휘파람'
자신의 피부와 패션 등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초식남이 늘면서 관련업계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피부관리숍과 남성용 기능성화장품 등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 중구 대봉동의 한 피부관리숍 여직원은 "예년보다 피부관리를 받는 남성들이 10%가량 증가했다"며 "남성 고객들이 꾸준히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특히 그녀는 "10회 정도 회원으로 등록하고 주기적으로 오는 남자들도 적잖다. 모두 키가 훤칠하고 패션 감각도 있는 편이다"고 했다.
연평균 3, 4% 정도 성장하는 전체 화장품 시장에서 남성 화장품 신장세는 20% 가까운 수치를 보이고 있다. 기능도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 애프터쉐이브나 스킨'로션 정도였던 남성용 화장품은 이제 주름개선이나 미백, 자외선 차단 등 기능성 화장품과 아이크림, 폼클렌저 등 품목을 세분화한 전문 라인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건어물녀를 겨냥한 상품들도 인기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7월 트레이닝복의 매출이 전월동기대비 2배 이상 급증했고 릴렉스 쿠션이나 빈백 등 건어물녀들이 즐겨할 만한 침구 및 인테리어용품의 매출도 전월동기 대비 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인식 '부정적'
하지만 아직 이 같은 신인류에 대해 사회적 인식은 그리 좋지 만은 않다. 특히 초식남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직장인 신재영(28'여'대구 수성구 수성1가)씨는 "초식남들은 조직에서 융화가 잘 되지 않고 너무 여자 같아서 이성적인 매력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최근 미혼남녀 400여명을 대상으로 초식남에 대한 견해를 설문조사했다. '주변에 초식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란 물음에 여성의 34%가 '있다'고 답했다. 있다고 답한 여성 가운데 62%는 '친구로는 좋으나 애인으로 싫다'고 했고 '친구와 애인 모두 싫다'는 응답도 28%나 됐다. 남성 응답자들은 초식남에 대해 '싫다'는 응답이 전체 61%였다.
회사 인사담당자들도 별 반 다르지 않았다. 한 취업포털이 기업 인사담당자 2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7%가 채용할 때 '초식남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열정'적극성이 부족할 것 같아서'(35.5%)가 가장 많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을 지녔을 것 같아서'(26.4%)와 '추진력'결단력이 약할 것 같아서'(20.0%) 등이 뒤를 이었다.
◆왜 초식남·건어물녀?
초식남이나 건어물녀의 등장은 사회적인 현상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 환경이 다변화하면서 과거의 가부장적 문화가 급격히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남대 사회학과 백승대 교수는 "사회의 전체적 흐름이었던 기존 남녀의 사회적, 성적 역할이 많이 약화됐다"며 "개인능력에 따라 인정받는 사회적 분위기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경쟁에서도 강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남성성이 약해지고 남성들이 중성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함께 연애나 결혼에 대해 달라진 인식도 한몫을 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자신 혼자 살기도 바쁜데 굳이 연애나 결혼에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어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는 것. 백 교수는 "사회 다변화로 과거보다 즐길 만한 것들이 무척 늘어났다"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삶을 영위해도 되는데 굳이 결혼을 통해 구속받거나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같은 사고를 가진 미혼남녀들이 계속 늘 것으로 내다봤다.
★★재미삼아 해보는 초식남·건어물녀 자기 테스트★★
▶초식남 테스트
- 격투기가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 회식에서 건배할 때 음료수도 좋다.
- 이성에게 고백을 받으면 일단 누군가에게 상담한다.
- 소녀 취향의 만화가 싫지 않다.
- 여자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만, 연애로 발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 편의점 신제품에 항상 관심을 가진다.
- 일할 때, 과자 같은 간식을 옆에 둔다.
- 외출보다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이성을 위해서 보다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위해 돈을 쓴다.
*6개 이상 해당될 때 당신은 초식도 90%, 3~5개일 때 당신은 초식도 60%, 2개 이하일 때 당신은 초식도 20%.
▶건어물녀 테스트
- 집으로 돌아오면 트레이닝복 차림이다.
- 휴일은 노메이크업이나 노브라다.
- '귀찮아'나 '대충', '뭐, 어때' 등이 입버릇이다.
- 술 취한 다음날, 정체모를 물건이 방에 있다.
- 제모는 여름에만 해도 된다.
- 외출할 때 까먹은 물건이 있으면 구두를 신은 채로 까치발로 방에 가지러 간다.
- 메일이나 문자의 답변은 짧고 늦게 한다.
- 텔레비전을 향해 혼자 열을 낸 적이 있다.
- 냉장고에 변변한 먹을게 없다.
- 냄비에다 직접 대고 라면을 먹는다.
- 방에 널어놓은 세탁물은 개기 전에 입어버린다.
- 최근 두근두근했던 일은 계단을 뛰어 올라갔던 것 정도다.
- 1개월 이상, 일이나 가족 관계 이외의 이성과 10분 이상 말하지 않았다.
- 솔직히 이걸 전부 체크하는 게 귀찮았다.
- 솔직히 질문에 체크하면서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나 자신을 깨달았다.
*4~7개 해당할 때 당신은 건어물 예비인, 8~11개는 건어물녀, 12개 이상은 초(初) 건어물녀.
★★매력 넘치지만 임자 있는 품절녀★★
초식남'건어물녀 외에 최근 남녀의 특정 성향을 가리키는 신조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어떤 것이 있는지 정리해 봤다.
▶품절남(또는 품절녀)=매력이 철철 넘쳐 여성으로부터 인기가 많은 남자이지만 이미 다른 여자가 가로채 임자 있는 남자가 된 사람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품절녀는 '임자 있는 여성'을 일컫는다.
▶철벽녀=연애는 하고 싶지만 연애에 대한 환상이 크고, 자존심이 높아 자신의 이상형에 미치지 못하는 남자들이 아예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벽수비'로 방어하는 여자를 말한다. 이른바 '콧대 센 여자'다.
▶육식녀=초식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성 교제에 적극적인 여성을 일컫는다. 마음에 드는 남성이 있으면 프러포즈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적극 내비치는 여성들이다.
▶토이남=여성성을 가진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남성을 가리킨다. 여자 입장에서는 여자를 잘 이해해 장난감처럼 편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성으로 교제하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다. 초식남과도 일맥상통한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