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삼척 두타'청옥산

입력 2009-08-13 13:57:18

빈맘으로 '두타'에 오르니 세상이 '청옥'처럼 빛나네

두타산의 두타(頭陀)는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청정하게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 불교 용어. 철학적인 산 이름을 수계(受戒)해서인지 이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수행으로 여겨진다. 두타산의 도반(道伴)인 청옥산(靑玉山)은 박달령을 경계삼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울창한 수림을 따라 십리길 박달령을 걷노라면 세파에 흐려졌던 마음이 '푸른 옥'처럼 맑아진다. 그래서 청'타 산행은 수도 과정과 닮아 있다. 잡념을 떨치고 산 속으로 들어왔으니 여기가 청정도량이 아닌가. 수도와 고행과 그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곳. 두타, 청옥산으로 나서볼까.

두타산은 백두대간의 힘찬 기운을 이어받은 강원도의 명산. 예로부터 '관동의 금강산'으로 불리며 문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두타산 정상의 조망은 영동(嶺東)에서도 명승으로 꼽힌다. 사방으로 쉰움산'덕항산'상월산'설악의 공룡능선 등 백두대간의 준령들이 한줄기로 뻗어있고 동해의 푸른 물결도 먼발치로 굽어볼 수 있다. 형제처럼 마주보는 청옥산 쪽 연칠성 능선은 군더더기 없는 미끈한 '스카이 라인'을 자랑한다. 특히 학등(鶴嶝) 능선은 그 모양이 거대한 횃대같다 하여 '의가등'(衣架嶝)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청'타산은 5~20km에 이르는 다양한 코스를 지니고 있다. 이곳을 등반하려면 시간과 체력을 잘 안배해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아기자기한 산세를 감상하려면 무릉계~청옥산~두타산~매표소로 이어지는 원점회귀 코스를 오르고, 장쾌한 조망을 따라 대간길을 섭렵하고 싶다면 댓재~두타산~박달령~청옥산~학등~신선봉~무릉계 코스를 타면 된다.

◆백두대간 장쾌한 능선 한눈에=산행 기점은 황장산 밑자락 댓재(810m)로 잡는다. 명주목이'통골목이를 지나는 댓재~두타산행은 6km 남짓. 시간은 3시간쯤 소요된다. 표고 차가 500m 남짓이라고는 하지만 경사길이 수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체력 부담이 무척 크다.

댓재를 뛰어올라 나리꽃의 배웅을 받으며 햇댓등을 향해 힘차게 스틱을 내딛는다. 잔뜩 낀 운무로 조망은 날려버렸지만 촉촉한 등산로와 청량한 산공기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오늘 산행을 안내한 백마산악회(대장 김만섭) 회원들과 두타산 정상에서 식사를 하고 바로 청옥산 정상을 향해 내달린다. 명품 조망으로 소문난 두타~청옥 구간이지만 오늘은 안개로 몸을 가리고 좀처럼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다. 십리길에 펼쳐진다는 녹색융단을 마음으로만 보듬을 뿐이다. 박달령, 문바위를 경유하는 능선도 4km에 이른다.

청옥산 정상은 밋밋했다. 울창한 나무숲에 갇혀 조망이 제로였다. 전망대라도 세워 시야를 틔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하산길. 학(鶴)의 등에 오른 듯 학등능선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계곡 경치도 살아나기 시작한다. 바위틈 속에 뿌리를 내린 노송들이 곳곳에 병풍을 펼쳐 놓았다. 돌 틈을 열어 씨앗을 받아들인 바위들의 포용이 경이롭다. 박달령 쪽의 운무 변화를 활력 삼아 하산길을 재촉한다. 어느덧 문간재를 지나 신선봉 입구. 내리막길에 익숙해 있던 두 발이 갑자기 나타난 경사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렇다고 이곳 최고 경승지 신선봉을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신선봉 정상에서 방송사 취재팀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아침마당'에서 여름철 산행특집을 찍고 있었다. 여름 산을 소재로 몇 가지 대화를 나누고 잠깐 인터뷰를 했다. 신선봉의 조망이 설악산의 천화대와 비견할 만하다는 그들의 말에 공감이 갔다. 특히 신선봉 북쪽 대협곡의 아찔한 배치는 '천애'(天涯)의 개념을 정의해주기에 충분했다.

◆무릉계 따라 학소대'쌍폭'용추폭포 명소들=무릉계곡은 우리나라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된 곳. 전국 내로라하는 비경들을 제치고 수위에 오른 데는 그만한 가치와 이유가 있는 법. 명불허전(名不虛傳)을 입증하듯 계곡을 따라 하늘문'학소대'쌍폭'용추폭포'삼화사 등 명소들을 배후로 거느리고 있다. 장엄한 바위와 계류가 하모니를 이룬 용추폭포, 두 개의 폭포가 기묘한 합수를 이룬 쌍폭, 4단 폭포를 배경으로 송림 위에 둥지를튼 학소대 등이 무릉계 경관의 포인트.

천년고찰 삼화사를 지나면 넓은 계곡 사이로 광장이 나타난다. 여기가 무릉도원과 경치를 다툰다는 무릉반석이다. 이 무릉반석을 배경으로 '금란정'(金蘭亭)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매표소 근처에 이르면 등산로 옆에 호쾌한 필력이 넘치는 초서 한 편이 눈에 띈다. 조선 전기 4대 명필의 하나인 양사언의 글씨를 복각해 옮겨놓은 것이다.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무릉계 자연 속에서 노닐고 탐욕을 버리면 수행길이 열린다'는 뜻. 자구(字句)를 되새길수록 그 묘미에 자꾸만 끌려든다. 청옥'두타산의 산세와 철학을 단 12자로 이렇듯 완벽하게 함축할 수 있다니, 선인들의 지혜와 필력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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