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욕하거나 싸우는 소리를 여간해서 들을 수 없다. 웬만한 일이면 그냥 양보하고 참으며, 남과 시비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일본의 욕은 그 종류가 너무 적다. 정말 욕만 가지고 보면 확실히 일본은 신사숙녀만 사는 나라답다.
일본은 '사무라이문화'라서 그런지 욕이라는 게 고작, '바보 같은 놈'이라는 '바가야로', '짐승'이라는 '칙쇼'(畜生), '이놈' 하는 '고노야로' 정도로, 우리의 욕 문화와는 양과 질의 모두에서 비교가 안 된다.
아마 이 점은 우리의 '선비문화', 즉 말 문화의 혜택(?)인지도 모른다. 선비들은 칼 대신 말로 다 해치우고, 일본은 말 대신에 칼로 정리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한국은 '한(恨)의 문화', 일본은 '원(怨)의 문화'라고 했는데, 이 또한 한일 문화의 특징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여담이지만, 내가 오사카한국총영사관에 근무할 때, 한국서 출장 온 혈기왕성한 분이 술이 과한 나머지 일본어로 "이 놈들, 다 죽여 버릴거야"라고 했더니, 순식간에 술집 손님들이 다 사라졌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사람은 객기로 한 말인데,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정말 두려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사람들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데, 우리는 그냥 말 대포만 잘 쏜다.
그러면 욕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나는 일본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언제나 의문을 느끼는 것은 '어째서 저렇게 매일 같이 수십명씩 죽이는 내용을 만드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모든 TV프로가 하나같이 자살, 살인, 원한을 테마로 하는 것은 아마도 일본의 원(怨)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시청자를 의식한 지나친 경쟁이 낳은 산물일까?
반대로 우리나라 TV프로그램은 눈물을 흘리고 쓸쓸해 하는 장면, 가슴 찡하는 그 무엇이 없으면 '고춧가루가 안 들어간 김치' 같이 맨숭맨숭 싱거울 것이다. 사랑하고,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애절하고,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겨울 연가' 같은 그런 것들!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떻게 좋은 일만 있을 수 있나? 미운 일도 있고, 가슴 아픈 사연도 많은 법인데, 그렇다고 아무리 밉더라도 죽이는 것까지는 좀 너무하지 않은가? 차라리 실컷 욕이나 하고 풀어버리는 게 훨씬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 어쨌든 요즘 세상에 가장 위력있는 선생님은 뭐니뭐니해도 TV인 것 같다. 옛날엔 '교육의 3요소' 하면 '가정, 학교, 사회'였지만, 현대는 '학교, TV, 지도자의 언행'이 아닐까?
"한 마리의 양이 이끄는 100마리의 늑대는, 한 마리의 늑대가 이끄는 100마리의 양 무리에게 패한다"고 한 나폴레옹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 지도자의 언행은 그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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