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찍 소리도 없이 죽어 있기에 염을 해놓았다 왜?"
젊은 시절에는 소문난 장사였다. 단오절 마을 씨름대회에 나가서 송아지를 몰고 들어오며 뭇처녀들의 은근한 눈길을 한몸에 받았던 영감이었다. 나이가 칠십이 가까웠지만 어느 누구보다 남성의 건재를 과시하며 부부간의 금슬을 자랑하던 영감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것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남성 무기력증이 찾아오고 보름께나 지났을까, 이번에는 갑작스레 할머니가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슬그머니 걱정이 앞선 영감님은 서울의 큰아들집에 전화를 했다. "네 엄마가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해서 올려 보낼 테니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라도 한번 받아보도록 해라"
서울에 올라간 할머니는 아들의 안내로 내과를 찾았는데 간단한 검사를 마친 의사가 하는 말이 '십이지장궤양'이니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주며 고추 같은 매운 것을 조심하라고 일렀다.
시골집으로 돌아온 할머니에게 영감님이 다그쳐 물었다. "그래 어디가 고장이 났다고 그래?" 그러자 할머니가 하는 말이 "십이 지장이 있다고 그러던가…"라고 하자, 영감님이 무릎을 치며 감탄을 했다.
"아이쿠, 역시 그게 문제였구나. 서울 의사 양반 참말로 용하네. 내가 요즘 제 구실을 못하는 걸 어떻게 보지도 듣지도 않고 한눈에 알아맞힌단 말인가…!" 영감님은 의사에 대한 경외감과 자신의 무기력증에 대한 좌절감이 뒤섞인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세월 가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이 남성 무기력증에 대한 기막힌 사연은 또 있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늘 바깥으로 나돌며 바람기를 잠재우지 못하던 남편이 나이가 지긋해서야 아내에게 돌아왔는데, 그나마 얼마 가지 않아 그곳에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힘이 남아돌 때 틈만 나면 담장 밖을 나서며 정력을 소진했으니 그럴 수밖에…. 아내는 미운정이 겹쳤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늦잠을 자고 있어났는데 아무래도 아랫도리의 상황이 수상쩍었다.
후다닥 일어나 속옷을 열고 확인을 해보니 맙소사! 거시기에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는 게 아닌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내를 황급히 불러들여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역정을 냈다.
그러자 아내가 시큰둥하게 던지는 말이 "며칠째 찍 소리도 없이 죽어 있기에, 염을 해놓았다. 왜?"였다. 남편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왕년의 가락을 생각하며 푸념조의 말대꾸를 했다. "거참, 인공호흡이라도 한 번 시도해보지 않고, 이렇게 허망하게 사망신고를 해버리다니…."
골프는 마지막 홀 장갑을 벗어봐야 알고, 고스톱판도 마지막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가 말해주듯이, 인생도 살아봐야 아는 것이다. 황금 같은 청장년 시절을 누리고도 늘그막에 감방이나 쪽박 신세를 면치 못할 수도 있는 게 삶이다.
평생을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두 내외의 이 노인정담은 차라리 정겹다. 노인 내외가 나들이를 가다가 개울이 나오자 할머니가 업어서 건너달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업고 물을 건너는데 은근히 미안하기도 하고 좋기도 한 할머니가 물었다. "영감~ 무겁지 않수?" 그러자 할아버지가 답했다. "무겁고 말고! 머리는 돌이지, 가슴은 축 늘어졌지, 엉덩이는 쓸데없이 크지…" 그러고 한참을 더 걸으니 또 개울이 나왔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자청해서 할아버지를 업어 건네준다고 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할아버지는 괜스레 미안해서 "안 무겁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대답했다. "하나도 안 무겁수! 머리는 텅 비었지, 가슴엔 헛바람만 가득하지, 거시기는 쭈그렁밤송이지…." 석양길 두 내외의 미운정담이 눈에 선하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젊은 꿈을 엮은 맹서야, 세월은 흘러가고 청춘도 가고, 한 많은 인생살이 꿈같이 갔네.… 사랑은 낙화유수 인정은 포구, 오면은 가는 것이 풍속이러냐, 영춘화 야들야들 곱게 피건만, 시들은 내 청춘은 언제 또 피나.'
월북시인 조명암의 시에 곡을 붙여 가수 남인수가 부른 '낙화유수'(落花流水)는 노인정담의 애틋함을 대변한다.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에서 쇠잔영락(衰殘零落)하는 인생과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여 삶이여 세월이여…. 小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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