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안의 성훈(가명·15·포항시 오천읍)이는 까까머리를 하고 있었다. 듬성듬성 머리가 빠져 있어 한눈에도 환자처럼 보였지만 얼굴만은 밝아보였다. 성훈이는 재생불량성빈혈로 일주일 전 골수이식 수술을 받고 무균실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좁은 격리병실에 갇혀 사는 일이 끔찍할 나이지만 성훈이는 "나을 수만 있다면 잠시 아픈 것쯤은 참아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의젓한 아이다.
정성훈군이 처음 아프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초였다. 엄마 최정옥(45)씨는 "늘 공사판을 전전했던 아이 아빠가 충남 당진에 1년 계약으로 일을 하게 돼 한동안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행복해하고 있을 무렵이었다"고 했다.
종아리에 작은 반점들이 줄지어 생겨 피부과 진료를 받았는데 이튿날 보니 엉덩이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지혈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며칠 후에는 입 안에 물집이 생겨 치과를 찾았더니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그런 것 같다"며 치아 스케일링을 권했다. 하지만 또 지혈이 되지 않았다. 밤새 성훈이는 고열로 끙끙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베개는 피가 입 밖으로 흘러내려 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이상하다 싶은 생각에 인근 병원을 찾아 혈액검사를 받은 결과 내려진 진단명은 중증 재생불량성빈혈. 의사는 "응급차를 내어줄 테니 대도시의 종합병원으로 빨리 이송하라"고 재촉했다. 최씨는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아 아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성훈아빠, 성훈아빠' 만을 반복할 뿐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며 "답답했던 아이 아빠가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듣고 난 뒤 곧장 당진에서 대구로 달려왔다"고 했다.
성훈이에게는 각종 약도 소용이 없었다. 몇백만원을 들여 비싼 면역억제제를 사용해 봤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 남은 방법은 골수이식. 다행히 7명의 골수적합자가 나타났고, 그 중 젊고 건강한 한 남성이 기꺼이 성훈이에게 골수이식을 해 줬다.
하지만 문제는 병원비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골수이식비는 새생명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아 겨우 해결했지만 2천만원에 달하는 약품구입비와 입원비 등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형편에 천만원을 넘는 병원비는 감당하기 힘든 짐이다. 일단 현금으로 지불해야 할 급한 약품비는 여기저기 급전을 구해 해결했지만, 입원 후 3개월 동안 병원비 중간 정산을 한푼도 못 해주고 있다.
최씨는 "왜 갑자기 이런 날벼락이 떨어졌는지 정말 답답하기만 하다"고 울먹였다. 남편이 1년간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게 되면서 난생 처음으로 20만원짜리 적금도 들어봤고, 올여름에는 아빠가 근무하고 있는 당진까지 버스를 타고 휴가라도 다녀오자고 굳게 약속했지만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성훈이가 최선을 다해 견뎌주고 있다는 것. 의사 선생님이 "견디기 힘들 텐데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며 "정말 부모님이 성훈이를 잘 키웠다"고 칭찬해 줄 정도다. 성훈이는 '다 나으면 할 일'을 꼽아가며 하루하루를 견딘다고 했다. 그 중 가장 하고픈 일이 아빠가 일하고 계신 당진에 갯벌체험 가는 일과 서울 놀이공원 가는 것, 그리고 TV를 보며 입맛만 다셨던 해물찜을 먹어보는 일이란다.
이제 성훈이에게는 이식한 골수가 잘 생착이 되는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이식 후에도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일이 종종 있어 안심하기는 이른 상황이지만 지금까지 힘든 치료를 견뎌냈으니 마지막까지 좋은 결과만 있을 거라고 엄마는 빌고 또 빈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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