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대구학'을 제안한다

입력 2009-08-04 07:00:00

'대구는 어떤 도시인가. 어떤 도시였으며, 앞으로 어떤 도시여야 하는가.'

대구 도심재창조 기획시리즈를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물음이다. 청춘기 몇 년을 제외하면 40년을 대구서 살아왔지만 대답은커녕 생각을 정리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고향에 대한 그동안의 과문함에 반성하며 책자를 찾고, 자료를 뒤지고, 사람들을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열정과 기대를 가득 안고 달려들었지만 작심을 이루기는 어려웠다. 기자의 불성실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책자와 자료와 사람의 부족이라는 이유도 그에 못지않다.

아무리 달려들어도 잘 잡히지 않았다. 경상감영 400년의 대구 역사는 어떠했으며,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조선 3대 도시로 근대화를 이끈 대구의 면모는 또 어떠했는지, 해방 이후 대구를 중심으로 벌어진 많은 사건들의 실상은 어떠했고 한국 현대사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대구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조각난 이야기들만 흩뿌려져 있었다.

'서울 定都(정도) 600년이 됐지만 서울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이 많고, 알고자 해도 그 결실을 당장에 기대하기 어렵다. 어느 누구도 서울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며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노력한 바가 없고, 어느 학문 분야도 서울을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서울학연구소 초임 소장 안두순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4월 대구시청에서 열린 도심재생 기본구상 용역 최종 보고회. 대구시가 도심을 되살리기 위한 정책의 큰 틀을 처음으로 마련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묻는 자리였다. 토론은 충실했지만 아쉬운 건 20여명의 패널 가운데 소위 '文科(문과)' 출신이 2명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도시계획, 건축, 디자인 등 공학계 전문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은 대구라는 도시를 두고 벌어지는 수많은 회의와 위원회, 토론회 등에서 흔하게 마주친다. 범위를 넓혀봐야 경제와 문화 일부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분야가 결코 여기에 그치지는 않을 터. 도시 사람들의 말이며 풍속이며, 지리며 역사며, 자연과 환경은 누가 이야기한단 말인가. 그 속에 깃든 사람들과 그 복잡한 관계성들은 또 어떻게 반영한단 말인가.

'부산학은 부산의 특정 문제를 개별, 고립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부산지역의 다른 문제들과의 상호관련 속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며, 편협한 전공 영역의 벽을 뛰어넘어 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학문적 실천이다.'(부산학 연구센터)

이제 우리도 '대구학'을 이야기할 때가 됐다. 단순히 다른 도시가 하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서울학' '부산학'이 벌써 20년 가까이 쌓아온 성과와 인천과 대전, 원주와 강릉까지 '지방학'을 세우는 의도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영남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거나, 지역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는 식의 소극적인 입장은 대답일 수 없다.

민주화 이후 대구가 보수의 도시로 낙인찍힌 이유, 수십년째 경제를 외치는데 꼴찌를 맴도는 이유, 어느 분야에서도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 삶과 철학이 빠진 문화만 시끄럽게 도시를 주름잡는 이유, 시민이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에서 벗어나 있는 이유, 그 모든 이유들이 궁금하다면 먼저 대구의 정체성부터 찾아야 한다.

김재경 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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