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 때문에, 좋은 일자리 없어서…사람들이 빠져나간다
인천에 다녀와 본 사람들이 요즘 화들짝 놀라고 있습니다. 천지개벽을 하고 있는 송도 신도시를 보고 하는 말이지요.
부산에 갔다온 사람들도 같은 말을 합니다.
"시내 중심가 식당에 갔더니 일본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여기가 일본인지, 우리나라인지 도무지 구분이 잘 가지 않더라."
"광안대교를 보니 그야말로 환상적이더라."
독자 여러분들, 모두 한번씩 들어본 이야기일 겁니다.
대구보다 '작은 도시'라고만 생각했던 대전은 또 어떻습니까?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동물원 나들이의 행선지가 대구 달성공원이 아닙니다. 대전이 목적지입니다. 사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대구 달성공원은 이미 동물원으로서의 브랜드를 잃었다는 얘기입니다.
도시 간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대구 입장에선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서울뿐만이 아닙니다. 부산·인천·대전에다 울산·창원 등지까지 이제 도시 간 전쟁에 참전하고 있습니다.
뉴욕·런던·파리 등 세계 일류도시도 놀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도 바삐 움직입니다.
지령 2만호를 맞은 매일신문은 총성 없는 싸움, 도시전쟁에 뛰어든 대구경북의 전투력을 짚어봅니다. 대구경북은 경제적으로는 이미 한몸이라 광역 경제권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도시권입니다.
그런데 들여다보니 대구경북은 정말 초라합니다. 다른 경제권에 사람과 돈을 뺏기고 있습니다. 빨아들이는 흡입력을 갖기는커녕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대구경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령 3만호 기사에서는 전세를 뒤집고 대역전에 성공한 대구경북에 대한 기사를 기대합니다.
◆떠나가는 곳, 대구경북
대구의 기업인 A씨는 이따금 서울 나들이를 한다. 손자손녀를 보기 위해서다.
A씨의 아들은 대구에서 전문직에 종사하지만 초교생인 A씨의 손자손녀는 엄마와 함께 서울에서 살며 학교에 다닌다.
A씨는 처음엔 아들을 나무랐다. 하지만 아들의 태도가 완강했다. 아들은 친구 B와 C, D 얘기를 하면서 그들의 자녀들도 똑같이 서울로 갔다고 말했다.
A씨는 손을 들었다. 손자손녀, 그리고 며느리는 서울 사람이 됐다.
대구의 자영업자 조홍석(39)씨의 고교 동창 모임은 분기에 한번씩 대전에서 열린다. 조씨 모임 구성원 10명 중 대구에 사는 사람은 사업을 하는 조씨와 교사를 하는 친구 2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한다. 처음엔 대구에서 모임을 가졌지만 장가를 간 서울 친구들이 반발했다. 대구로 자주 오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대구파'가 적다 보니 조씨는 '서울파'에 항복했고 중재안으로 대전 모임을 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인구 집계를 보자. 대구경북의 인구는 2000년까지 증가세를 유지했으나 2001년 이후 7년 연속 감소했다.
2000년 대구경북지역 인구는 530만2천명이었지만 2007년엔 510만5천명으로 감소, 7년 만에 20만명이 사라졌다.
같은 기간 전국적으로는 인구가 늘었다. 전국적으로 145만명의 인구가 증가했고 수도권(193만명↑) 충청권(14만명↑)의 인구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대구경북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태어나는 아기가 적어서가 아니다. 기업인 A씨의 손자손녀처럼, 자영업자 조씨의 친구들처럼, 이곳에서 자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갔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대구경북지역 순유출 인구는 25만3천명이었다. 이 가운데 수도권으로의 유출이 81.8%(20만7천명)를 차지했다. 연령계층별로는 30대 이하가 86.4%(21만9천명)였다. 젊은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추풍령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왜 떠나시나요?
공장터를 알아보던 창원지역 제조업체 CEO들이 대구에 왔다가 깜짝 놀라는 것이 있다.
"임금이 와 이래 싸노? 여가 그래도 대구 아이가? 월급을 요래만 줘도 된단 말이가?"
대구경북지역 봉급생활자 중에서 임시직이 아닌 상용직 노동자의 비중은 1991∼2000년 기간 동안 58.2%였다. 전국 평균(54.8%)에 비해 크게 높았다.
하지만 2001∼2007년 중에는 50.1%를 기록, 전국 평균(51.2%)을 밑돌았다.
상용직 노동자 비중이 적다 보니 임금은 자꾸만 떨어지고 있다. 월평균 임금(2007년 기준)의 경우 대구(180만원)와 경북(195만원) 모두 전국 평균(213만원)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월급 많이 주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사람들이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고 있다. 대학 졸업장만 받으면 떠나는 것이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비수도권 대학 졸업자의 35.1%가 수도권 근무지에 취업하고 있는 반면, 수도권 대학 졸업자는 7.4%만이 비수도권에 취업 중이다.
지역의 한 전문건설업체 CEO B(44)씨는 "최근 서울에 사무소를 냈다. 대구경북엔 일감이 너무 부족해 직원 월급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수도권에 인접한 충청·강원권만 살고 대구경북을 비롯한 남부지역은 그야말로 시골로 전락할 수 있다"고 했다.
◆종이 호랑이 대구경북
인재 창출의 요람, 한강 이남 최고의 알짜 부자 보유 등 대구경북을 상징하던 말들은 이제 '옛말'이 됐다.
대구경북은 이제 사람을 뺏기는 도시가 되면서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인구 감소가 진행되면서 대구경북지역 생산가능인구는 2000년대 들어 감소세로 전환했다. 1991∼2000년 연평균 0.9%의 생산가능인구 증가세를 보였던 대구경북은 2001년부터 2007년 사이 0.4%의 생산가능인구 감소세를 나타냈다. 이 기간 전국의 생산가능인구는 증가세를 유지(0.6%↑)했는데도 말이다.
특히 인적자원이 지역의 주요 자본이 되는 상황에서 고학력 계층의 유출은 대구경북지역에 치명타를 날리고 있다.
학술적으로 얘기하면 고학력 계층의 유출은 총요소생산성의 하락을 초래한다.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이란 경제성장 중 노동, 자본 이 외의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으로 인적자본, 기술, 교육, 제도 등의 영향을 받는 것.
실제로 2007년 기준으로 대구경북지역 취업자 중 대졸 이상 학력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8.3%로 전국(24.0%) 및 수도권(28.0%)을 크게 밑돌고 있다.
고학력 계층의 이탈은 소비둔화로 이어지고 있다. 돈을 쓸 사람이 없다는 얘기고 결국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직결되고 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대구경북지역의 평균 민간소비 증가율은 2.5%로 전국(3.3%) 및 수도권(3.8%)에 비해 증가세가 크게 저조했다.
대구경북지역의 2001∼2007년 중 평균 주택 증가율이 전국(2.7%) 및 수도권(3.5%)에 훨씬 못 미치는 1.6%에 머문 것도 인구 감소와 구매력 저하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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