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솥까지 챙겨들고 이고 메며 떠난 섬여행
♥엄마와 함께한 최고의 여름휴가
홀로 계신 친정 엄마께 안부 전화를 가끔 드리면 엄마는 늘 너무나 반가워하시며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항상 자식이 잘 지내는지 걱정되고 보고 싶었는데 잘 지내고 있다고 알려 주니 안심이 되고 목소리라도 들으니 만난 듯이 기쁘다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의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자주도 아닌 가끔 드리는 전화 한 통에 이토록 고마워하시고 기뻐하시니 직접 찾아뵈면 얼마나 좋아하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 때 들르기는 하지만 밥 한끼 먹기가 바쁘게 늦게 출발하면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하룻밤이라도 자고 가라는 엄마의 간청을 뒤로하고 서둘러 떠나오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 휴가의 하루를 엄마를 위해 쓰기로 했다. 미리 간다고 전화 드리면 내가 즐겨 먹는 음식을 준비한다고 아픈 다리를 끌고 먼 시장을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할까 싶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시게 출발하면서 전화를 드렸다. 엄마는 아이처럼 좋아하시면서 조심해서 오라고 몇 번이고 당부를 하셨다.
두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 두고 친정을 향해 출발했다. 예상했던 대로 엄마는 도로가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고 계셨다. 나를 보시자 거의 뛰다시피 다가오시며 나를 안으셨다가, 손도 잡으셨다가, 등도 쓸어주시다가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다리도 안 좋으면서 왜 나와 있느냐고 나무라니 금방 나왔다며 10분도 안 되었다며 둘러대신다.
점심에 맛있는 회를 사 드리기로 했는데 엄마는 식당으로 가기 전에 자꾸 떡을 잡숫는 것이었다. 회 맛없게 왜 자꾸 떡을 먹느냐니까 버리면 아까워서 그런다며 드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엄마는 회를 먹으러 가자 조금 드시는 듯하더니 아까 떡을 먹어서 생각이 없다며 내 쪽으로 회 접시를 아예 옮겨다 놓는 것이었다.
늘 엄마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키우셨다. 예전에는 엄마의 이런 희생적인 태도에 그러지 말라며 화를 내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화를 내지 못했다. 나도 자식을 키워 보니 자식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큼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눈물을 얼른 감추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 드렸다.
저녁에 엄마랑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 등에 찰싹 붙어 잠이 들었다. 막내딸 얼굴을 하루 종일 마음껏 보신 엄마도 기쁨으로 내가 등에 달라붙어 있는데도 더운 줄도 모르시고 곤히 잠이 드셨다. 내일 아침 내가 가져갈 채소와 참기름이 든 보자기가 출입문 옆에 놓여 있었다. 엄마를 위해 쓰기로 한 휴가에 여전히 받기만 했지만 자식에게 끊임없이 베푸는 사랑이 엄마 행복의 전부인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아름답고 애틋한 여름 휴가였다.
김순희(대구 북구 구암동)
♥압력밥솥까지 챙겨들고 섬으로
내가 어렸을 적 우리집은 작은아버지 식구들과 함께 섬으로 3박 4일 여행을 갔다. 지금에 와 생각하면 꽤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그 당시 우리 일행의 행색을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다.
우리집과 작은집 식구를 합하면 모두 열명, 최대한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 잠은 텐트에서 자고 식사는 모두 만들어 먹기 위한 짐이 주렁주렁,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우리들까지 모두 하나씩 짐을 들고 가야 했다.
텐트 2개에 버너, 파란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하나, 이불이며 돗자리, 갈아입을 옷들에 쌀, 김치, 하다못해 압력 밥솥까지 들고 주렁주렁, 덕분에 아침부터 챙겨도 언제나 빠진 것이 없는지 부산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 시내버스를 타고 부두에 도착, 배를 타고 연대도라는 큰 몽돌이 많은 섬에 닿아 어느덧 점심때가 다 되어 갔다.
당장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하는 우리들이 튜브에 입을 대고 불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텐트를 같이 세우는데 우리를 동참시키셨다. 지금처럼 가볍고 하나로 이어지는 텐트가 아니라 쇠로 된 폴대를 하나하나 연결시켜 하나의 긴 관처럼 만들어 천에 끼워 넣어야 하는,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다.
그 작업이 끝나면 밥을 해 먹고 모두들 수영을 하러 바다에 하나 둘씩 뛰어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다들 수영복을 입지도 못했고 선크림이란 말조차 생소한 때니 낮에는 수영하느라 몰라도 저녁이 되면 등이 따가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침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지금처럼 텐트 밑에 두툼한 돗자리를 깔지도 않아서 돌 위에 세운 텐트는 등이 배기기 일쑤였다.
항상 예정은 2박 3일 정도였는데, 늘 우리의 성화로 3박 4일이 되기도 하고 4박 5일이 되기도 했던 섬으로의 휴가는 오빠가 중학생이 되면서 끝이 났다. 시험을 쳐서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하니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열명의 식구들이 민박하면서 사먹을 정도로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으니 그런 빈곤함을 무릅쓰지 않으면 여름 휴가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면서도 번번이 우리들을 데리고 가 준 아버지가 계셨기에 이 여행이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 주고도 못 살 체험이란 것을 우린 그때 했던 것 같다.
전 식구가 텐트에서 자면서 끼니 해결하기, 바다에서 개헤엄 치며 하루 보내기, 배타고 섬에 가기(유람선이 아니고 그냥 배로 들어가는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배), 바다에서 고동 따서 삶아먹기, 우뭇가사리(바다풀) 따서 우무 만들어 먹기, 실 하나로 낚시하기, 새벽에 텐트 열고 나와 바다 보기, 그 섬에서 텐트치고 자고 있던 집은 우리집뿐이었으니 조용한 밤바다 별 보기. 이런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이 아닐게다.
그때의 특별하고도 신나는 여름 휴가의 기억은 영원할 것이다. 지금은 같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먼 나라로 여행가신 아버지, 고맙습니다.
박현애(대구 달성군 다사읍)
♥아프리카 더위 이긴 봉사
2006년, 아프리카 토고에 해외봉사 활동을 갔었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마음이 보석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나 보고 싶은, 보고 싶어서 내 일기장 맨 앞장에 붙여놓고 보는 토고에서 얻은 또 하나의 엄마 마리에뚜 이모가 있다. 이모는 수도 로메에서 가장 큰 장터의 허름한 파라솔 아래에서 마카로니, 토마토 소스, 꾸스꾸스, 물, 담배 등 자잘한 것들을 파셨다. 마리에뚜 이모는 발 한쪽이 코끼리처럼 퉁퉁 붓는 병에 걸려 있었고, 남편은 다른 여자랑 살고 있어 하루하루 근근이 사셨다. 그 앞을 지나가면 어느새 알아보고 달려온 이모는 내 손에 물 한 봉지를 쥐어주곤 하셨다. 플라스틱 통도 아니고 비닐 봉지에 담긴 10원짜리 물은 그저 평범한 것이었다. 우린 서툰 불어로나마 함께 이야기하고 전통 언어인 에웨어로 노래도 부르며 서로 가까워졌다.
어느 날, 평소처럼 이모 집에 갔다가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누군가 "스~~"하고 부르면 달려가서 주문을 받는다.(보통 아프리카에서는 스~~하고 소리를 내며 사람을 부른다.) 그날 반나절 일하면서 다른 건 안 팔리고 겨우 물 몇봉지만 팔았다. 그제야 이모가 내게 준 물 한 봉지가 보통 물이 아닌 이모의 지극한 정성과 마음을 담은 물임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모는 토마토 소스가 얹어진 100원짜리 밥과 100원짜리 삶은 계란을 사 주셨다. 그 계란을 보는 순간 난 울었다. 내가 토고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이 삶은 계란이기도 했지만, 그 계란 하나를 사주려고 돈을 자신의 치마 천에 꽁꽁 매어두고 나를 기다린 이모가 너무 고마워서였다.
이모는 그것 하나 사려고 그 땡볕에서 얼마나 많은 물 봉지를 팔았을까? 토고에서도 가난하게 사는 이모가 준 그 계란은 100원짜리가 아닌 이모의 마음이었다.
옛날에 나는 조금 더 좋은 옷, 좋은 음식이 나를 만족시켜줄 수 있다고 믿었다. 아프리카에서 다른 사람과 마음과 마음이 만날 때 행복하다는 것을, 서로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감동을 이어나가고 싶다.
이순향(대구시 동구 입석동)
※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원고 분량은 제한 없습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체육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황순자(경산시 삼풍동)
다음 주 글감은 '여름휴가Ⅱ'입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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