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를 촉발시킨 첫 번째 요소는 시간이다.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는 시간관은 시계가 발명, 보급되면서 종말을 고했다. 사람들의 아침을 깨우는 건 부지런한 새들의 지저귐이 아니라 시간 맞춰 울리는 자명종 소리로 바뀌었다. 노동자들의 하루는 쪼개고 계산할 수 있는 양적 단위로 바뀌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이용됐다.
"자연의 리듬을 표현하는 교회의 종탑을 상인들의 시계가 대신한 순간 근대 도시의 삶은 시간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했다"는 일본 철학자 이마무라 히토시의 지적은 이제 뒤집을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낮이 긴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동안 표준시보다 1시간 시계를 앞당기는 서머타임제 역시 시간을 이용해 삶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시계를 바꾸면 생활이 따라 달라질 것이란 생각은 자연의 흐름조차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맹신에서 비롯된다.
서머타임제를 고안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1784년 당시 파리 시민과 상인들이 밤에 켜는 양초 값 부담에 허덕이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제안했다. 처음 도입된 것은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였는데 전쟁 중 연료 절약, 공습 대비 등의 목적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과 1988년 시행됐는데 미국과 유럽 TV 중계가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28일 국무회의에서 서머타임제 도입 방안을 논의했다며 제시한 근거 역시 에너지 소비 감소, 생산 증가, 내수 활성화 등 경제 효과에 집중해 있다. 1시간 일찍 출근하지만 퇴근 시간은 같을 것이란 노동계의 반발을 예상하고 대대적인 '정시 퇴근 실천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구상까지 보탰다.
전 국민의 생활리듬을 1년에 두 번씩 바꾸는 데 대한 배려는 찾기 어렵다. 시간만 바꾸면 모두가 따라올 것이라는 발상이 국민들의 건강과 정신에 미칠지 모를 악영향은 계산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 관계자는 "국민에게 한 시간을 되돌려준다는 삶의 질 개선 차원"이라고 강조한다. 누가 어떻게 잃었다기에 되돌려준다는 것일까. 오는 10월까지 여론을 들어 시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는데 명분 쌓기를 위한 형식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재경 사회1부 차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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