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멘탈이다] 기억Ⅰ

입력 2009-07-27 07:00:00

우리 생활에서 기억을 빼고 나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고, 어제 있었던 일을 기억하며, 내일 할 일을 머리에 넣어두는 것 역시 모두 기억이다.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이 내 것인지 아닌지 아는 것까지도. 이렇게 보면 인간은 그가 가진 기억의 총화이다. 그래서 윌리엄 제임스는 기억을 '전적으로 신이 내려준 자질'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기억이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인지기능 중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또 이론도 아주 풍성하다. 보유하고 있던 기억이 떨어지는 것이 치매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는 마음에 상처를 준 사건에 대한 기억이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괴롭다. 병적이 아닌 과도한 기억의 예로는 에든버러 대학의 수학교수였던 알렉산더 에이트컨을 들 수 있는데, 원주율값을 1천자리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필자가 최근에 만난 60대 초반의 남자는 아홉살 때 당한 두뇌 손상을 뇌막염으로 '믿고'있다. 왜곡된 기억인데,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그의 '믿음'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보의 보존 기간에 따라 기억을 나누기도 한다. 직관상 기억은 1초에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기억인데, 낱장으로 제시되는 활동사진의 필름들을 연속적인 것으로 깨닫는 것이 이를 이용한 속임수이다. 몇 초나 몇 분 동안의 기억은 단기기억이고, 수분 이상 며칠 동안 없어지지 않는 것은 장기기억이다. 방금 들은 전화번호를 메모 없이 건 뒤 잊어버리는 것은 전자의 예이고, 두어시간 전에 먹은 점심의 반찬을 기억하는 것은 후자이다. 철부지 단테가 진홍색 옷에다가 허리에 끈을 두른 베아트리체를 '새로운 삶'에서 묘사하기까지 20년이 지나도록 잊지 못한 것은 원격기억 덕분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후보를 찍었는지 기억하는 것은 본인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으로 삽화성 기억이라고 부른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호머의 작품임은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들어서 아는 지식 즉, 의미 기억이다. 자동차 운전에는 엔진을 켜는 행동에서부터 위급시의 급정거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한 동작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련의 동작들도 머리에 기억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것이 절차기억이라는 것이다.

기억을 보는 관점은 이렇게 다양하다. 그 어느 것도 기억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고, 기억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론이 새로이 개발돼야 한다. 뇌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박종한 대구가톨릭대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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