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제도를 적용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77년 7월 건강보험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것으로 치면 32년이다.
건강보험증이 없어 중병에 걸리면 논 팔고 집을 팔아야 했고, 이웃의 건강보험증을 부러워하며 심지어 보험증을 몰래 빌리기도 했다. 치료비 걱정에 변변한 치료 한 번 제대로 못 받던 이들이 많던 시절에 우여곡절 끝에 전국민 건강보험이 실시되던 날의 감회가 아직도 생생하다.
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되면서 누구나 까다로운 절차 없이 병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됐고,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 연장은 물론, 영유아 사망률이 세계 최저 수준에 달하게 됐다. OECD 국가 중에서도 보험료와 의료비가 가장 낮은 수준인 반면 건강 수준은 3위, 의료 수준은 5위에 이를 정도가 됐다.
전국민 건강보험 2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 국민건강보험이 막연히 치료비를 지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 외에도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바로 의료는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여서 의료 수요자와 의료 공급자 간에 정보의 비대칭이 늘 발생하고 또 귀중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수요자는 공급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재화와는 달리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에만 맡길 경우 의료비는 통제할 수 없이 상승하게 되고 만다. 결국 의료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정 수준 규제와 개입이 필요하고, 의료공급자와 동등한 협상을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것이다. 이를 운영하는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보험료를 걷어 진료비를 지원함은 물론 국민을 대신해 의료수가를 협상하고, 보험 급여비가 적절히 지급되도록 늘 관리'감시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은 돈벌이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익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높은 급여 혜택을 보장하는데 지난해의 경우 국민 1인당 연평균 보험료 부담액이 32만2천39원인 반면 공단이 진료비 등으로 병원 등에 지급한 비용은 1인당 55만5천286원으로 지급률이 172%에 달했다.
이뿐 아니라 민간의료보험과 달리 병이 있거나 없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장애가 있거나 없거나, 무조건 자동 가입되고, 병력이 있다고 해서 보험료를 더 받고, 치료를 했다고 해서 보험료를 할증하는 것도 없다.
보험료도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이 내고 어렵고 힘든 사람은 적게 내는 대신 병원 가서 받는 혜택은 부자라고 더 주고 가난하다고 덜 주는 것 없이 똑같다. 민간의료보험사가 보험료를 많이 내는 사람에게 혜택을 보다 많이 주고 보험료를 적게 내는 사람에게 혜택을 덜 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바로 국가가 운영하여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외국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둘러보고 두 가지를 신기해 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저렴한 건강보험료로 수준 높은 의료혜택을 받는데 놀랐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원성을 산다는 것이다.
OECD 국가 중 전국민 공보험이 없는 미국의 의료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 보험회사, 제약회사, 병원 등 의료 시스템이 민간에 온전히 맡겨진 탓에 4인 가족 기준, 연간 의료보험료가 1천390만~1천770만원에 이르고,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가 외과수술 받고 열흘간 입원하면 치료비가 1억원에 이른다. 미국의 사례는 민간의료보험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는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주며, 우리나라에 국민건강보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알게 해준다.
모쪼록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국민건강보험이 최근 불거진 영리병원 허용 등 의료의 공공성을 헤칠 수도 있는 제도에 흔들리지 않고 국민의 건강을 100년, 200년이 넘도록 지킬 수 있게 물을 주고, 비료도 주고, 잡초를 뽑아 주어야 할 것이다.
오필근(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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