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침범 日 순시선에 10분간 총격
'해상보안청 소속 순시선 은기(隱崎)는 1954년 8월 23일 다케시마 부근 서도 동북방 700m 지점에 도착하자 오전 8시 40분 서도 해안에 있는 경비대로부터 총격을 받았다. 발사는 약 10분간 계속되었는데 그동안 600발이 발사되었다. 총탄 중 일부는 순시선 좌현에 명중되었다.'
1954년 8월 26일 일본 외무성 각서에 기록된 내용이다.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타국 경계를 침범한 함정이 총격을 받는 것은 흔히 있을 법한 일이 아닌가. 의용수비대로서는 '허가 없이 상륙하는 자는 총살'이란 홍순칠 대장의 지휘 방침을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측은 순시선에 총격을 퍼부은 사건에 대해 항의를 해왔다.
총격 당시 의용수비대와 경찰은 등을 돌리고 각각 서도와 동도에 나뉘어 있었다. 일본 순시선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독도 의용수비대와 경찰은 서로 화해하고 '합동근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서로 조(組)를 짜서 식사당번도 정하고 공사도 함께했다.
그해 여름, 독도의용수비대는 어수선한 가운데 많은 방문객을 맞았다. 8월 초에는 해군 함정 815함 LST(Landing Ship Tank·상륙용 주정)가 대원 300명을 싣고 등대 설치공사를 위해 독도에 도착했다.
독도에 상륙한 해군함장은 팬티만 입고 나서서 '나는 수비대장이오. 독도에 어떻게 왔소'라는 홍순칠 대장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함장은 막사 사무실과 내무반 통신실을 둘러보고 소속도 없이 무장한 이들에 의아해 했지만 애국심 하나로 독도를 지키겠다고 나선 수비대임을 알고 적이 놀랐다.
수비대와 병사들은 보트와 전마선으로 시멘트를 운반하고 물을 길어 날라 5일 만에 독도 무인등대를 세웠다. 등대 공사를 마친 병력이 돌아간 후 또 다른 함선 한 척이 도착했다. '해병 수로국'에서 독도수역 측량을 위해 온 것이었다.
의용수비대는 10여명 장병들의 식량과 부식을 받아 함께 취사하면서 전마선을 타고 측량줄을 물속에 넣고 함께 수심을 측정하는 작업을 도왔다. 먹을거리도 식량도 변변찮던 그들에게 군인들은 쌀과 된장 마늘장아찌 따위를 주고 갔다. 의용수비대는 두 차례 해군의 도움으로 그나마 무사히 여름을 넘길 수 있었다.
바다 모기의 기승이 한풀 꺾이고 독도에 해국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 울릉경찰서장으로부터 무선이 날아들었다. 6·25전쟁 시절 백두산 호랑이로 이름을 떨쳤던 김종원 경찰국장 일행이 10월 22일 독도를 위로 방문한다는 내용이었다. 일행은 경찰국장과 수행원, 도의회 의장단 5명, 경북부인회 간부 5명, 신문기자 5명, 경찰악대 35명 등 모두 50명.
유사 이래 최고위층을 맞이하는 독도는 당연히 비상이 걸렸다. 의용수비대는 주변 환경정리를 하고, 잠수에 능한 대원 다섯명을 뽑아 전복을 따도록 하는 등 준비를 했다. 그러나 막사가 있는 동도 정상까지 길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50명 모두 한 사람씩 로프를 허리에 매고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오르도록 했다.
10월 22일, 해양경찰대 소속 칠성호를 타고 온 김종원 경찰국장 일행이 전마선을 이용해 내리고, 울릉도에서 뒤따라온 오징어배에서는 위문품들을 내렸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대원들의 부축을 받아 정상에 오르고 경찰악대의 팡파르가 울리는 가운데 위문행사가 시작되었다. 애국가로부터 김 국장의 격려사가 이어지고 내빈 축사로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당시 위문행사에 참가했던 경북도의회 서돈수 의원은 독도에서 돌아온 다음, 그날의 감회를 매일신문에 기고했다. 그는 감격했고 그의 글도 흥분된 경향을 보였다.
'未知(미지)의 세계였던 절해의 孤島(독도)! 독도에 막상 이르러보니… 갖은 고통을 무릅쓰고 이곳을 사수하는 용사 00名의 경비원이 砲臺(포대)를 에워싸고 왜적의 침입을 미연에 방지하는 한편 형극 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는 이 땅 이 겨레에게 참다운 영광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갸륵한 심정을 그들의 눈동자에서 역력히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岩絶壁(암절벽)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무공 偉勳(위훈)에 빛나는 김 경찰국장께서 앞장서고 밧줄을 타고 일행이 기어 올라갈 적엔 느닷없이 등골에서 식은땀이 방울방울 맺혀짐을 느끼면서 겨우 九死一生(구사일생)의 기분으로 산중턱에 다다르자 용사들은 환성을 일으켰으며, 우리들은 모조리 감격의 눈물을 지우면서 위문품을 나눠주기 전에 뜨거운 악수를 손꾸락아 부러져라고 굳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감격 속에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독도의용수비대 통신사에 전문(電文)이 도착했다. 2시간 내로 독도 인근에 태풍이 덮친다는 것. 일행은 행사를 중단하고 급히 귀환 준비를 서둘렀다. 이 과정에서 독도는 잊을 수 없는 첫 불운의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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