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생각] 새로운 마음으로

입력 2009-07-21 07:00:00

오랜만에 장마가 그치고 하늘이 개었다. 파란 토란잎 위에 묻은 물방울들이 빛을 받아 무지개처럼 영롱하다.

화창한 날씨가 못내 아까워 막내를 데리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둘째에게 다녀왔다. 학교는 온통 아이들이 이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때마침 기숙사 방을 옮기는 날이었다. 기숙사 각 호실은 문 하나를 열고 들어서면 중간에 목욕실이 있고 양옆으로 방이 위치해 있다. 양쪽 방은 같은 호이고 각방에는 세 명씩 생활해서 룸메이트가 셋. 호메이트는 6명인 셈. 매학기 말마다 방을 이전하면 졸업 때까지 대부분을 기숙사에서 지내며 기쁨도 괴로움도 함께하는 형제 같은 친구들이 그만큼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들이 서로에게 적응해가면서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필요한 적응력도 길러질 것이고 성격도 둥글둥글해져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는 긍정적인 면이 많아 보였다. 생활공간을 바꾸어 새로운 친구들을 서로 더 많이 깊이 알고 친해진다는 목적 외에 그보다 더 깊은 의미는 그동안 묵은 먼지들을 툭툭 털어내고 새로이 정리를 하며 계획을 세우고 다지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늘 새롭게. 더 나은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환경을 바꾸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 이제는 공감하게 된다.

아이들이 이사하는 날이면 학교에서는 학부모 회의가 열린다. 오랜만에 전국 각지의 멀리 있는 부모들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와서 학교 이야기도 듣고 그동안 못 본 아이들 짝들의 부모 얼굴도 보는 계기가 되어 이곳저곳서 안부 인사를 나누느라 분주하다. 공식적 학교 행사가 끝나면 부모들은 각자 자기 아이들의 기숙사 방에서 어설프게 정리해 놓은 물건을 다시 챙겨주기도 하고 또 먼지가 쌓여 있을 거라 생각해 청결을 강조하는 이들은 볕 좋은 날이면 침대의 매트를 들어내어 기다란 막대기로 탕탕 털며 아이마냥 즐거워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매트 두들기는 소리가 어우러지면 예전의 우리 어머니들이 여름빨래에 풀 먹여 두들기던 그 방망이 소리가 생각난다며 신나게 웃음을 날린다. 산골아이들의 싱그런 미소마냥 그 모습이 더없이 신선하다. 깨끗하게 정리가 끝나면 우리 아이는 하나의 의식처럼 '횡성한우의 명소'로 향하길 원한다. '우리 한우 농가를 우리가 살려줘야 한다'는 게 줄기찬 아이의 고기 먹는 이유였지만 조금이라도 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 차를 몰아 식사를 함께하러 간다.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그곳은 예약만 받아서 최상급의 고기를 직접 주인이 구워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15년 넘게 그 원칙을 지켜오는 그 집 벽 한쪽은 유명 연예인들, 정치인들의 멋있게 휘갈겨 쓴 서명이 든 액자로 가득하다. 인지도에 따른 액자의 배열이 이채롭다. 아이에게 저쪽 사인 판에 네 사인이 걸릴 수 있도록 유명해져보라고 우스갯 소리를 하며 주인의 정성이 가득한 식사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무엇보다 이사 후 정리정돈도 척척 잘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 산골소년으로 자기의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하도록 극기 훈련받으며 무척 많이 큰 것 같아 대견했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던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생각은 바뀌어야 하고, 방식은 발전해야 한다. 오늘이 바로 그 진보를 이루어야 할 때이다' 라고 했다. 인위적인 환경을 바꿈으로서 새로이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 보자.

정명희(민족사관고 2년 송민재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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