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엄마 생각

입력 2009-07-20 08:26:37

엄마 생신이 며칠 남지 않자 딸들의 전화통에 불이 난다. 딸부잣집답게 딸들끼리 의논이 많다. 작은집이라도 두었을 상황이었지만, 아버지는 나이 차 많은 엄마까지 끼워 7공주라고 예뻐하셨으니, 나름 복이 많은 엄마이다. 얼마 전 내 손을 꼭 잡은 엄마가 혹시 당신이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하라신다. 아마 한 번씩 엄마 속을 긁는 딸이 뭔가 섭섭했었노라고 툴툴거렸음이 틀림없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참 엄하신 분이셨다. 그래서 어리광이나 떼를 부리지도 못했다. 일제시대에 학교를 다니고,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셨던 어머니는 당당하고 자립심 강한 딸들로 키우고 싶어 하셨다. 이른 귀가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저녁도 없었고, 연대 책임진 언니들도 같이 야단을 맞아야 했다. 그렇지만 생각과 교육에 있어서는 참으로 자유롭고 진취적이셨다. 옷이나 군것질에는 주머니를 닫았지만, 스케이트며, 피아노며, 레코드판 등 자식들의 자발적인 공부나 문화적인 욕망은 힘들어도 채워주고 싶어 하셨다.

본인 스스로도 지적 탐구를 포기한 적이 없는 분이시다. 조금만 더 젊었으면 운전면허를 따고 싶다고 하시고, 지금도 읽고, 보고, 기도할 것이 너무 많아 시간이 모자란다고 하신다. 손자 손녀들이 다녀온 스키 코스도 직접 보고 대화에 동참하시려 하는 놀라운 호기심과 애정을 가진 분이시다.

한방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어린 시절, 잠결에 머리를 쓰다듬던 엄마의 아련한 손길! 초저녁잠 많은 나의 이른 새벽을 안심시키느라 꼭 안아 토닥여주던 숨이 막힐 것 같았던 품속! 화장을 하고 속치마만 입고 거울에 뒤태를 비추어보던 예쁘고 섹시했던 모습! 그랬던 엄마가 이제 팔순이 넘어, 꾸부정한 허리를 펴고, 주름진 얼굴을 환하게 펴서 나를 반겨줄 때면, 주책없이 자꾸 눈물이 난다. 꼬옥 안아보지만 애기처럼 또 새털처럼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다.

엄마가 뜨고 있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 영화 '마더', 그리고 연극 '엄마와의 2박 3일' 등이 엄마를 삶의 현장으로 불러내고 있다. 왜 이 시대 엄마를 다시 생각하고 엄마의 삶과 역할을 재조명하는가? 힘든 이 시기, 어딘가 기대고 싶은 고단한 마음을 받아주고, 팍팍한 삶도 어루만져주고, 못나도 용서해주는, 그래서 돌아가고 싶은 곳이 엄마이기 때문일까?

하느님이 너무 바빠 모두에게 엄마를 주셨다던데, 동생 전화 때문인지 아직도 못난 딸 위해 촛불 밝혀 기도하는 엄마 생각에 종일 마음이 절절하다.

금동지 대구가톨릭대 외국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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