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사실주의와 조형주의
빛바랜 옛 사진 속에 남아있는 희미한 모습들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한없이 상념에 잠길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은 '사진의 작은 역사'란 글에서, 이미 흘러가버린 순간의 평범한 삶속에 미래적인 것이 오늘날까지도 얘기를 하면서 숨어 있기 때문에 과거의 사진을 보면서 현재적인 순간을 찾고 싶어 하는 제어할 수 없는 충동을 느낀다고 했다.
흰 뭉게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한여름 오후 한때 쯤 돼 보인다. 고개를 넘던 한 중년의 남자가 잠시 타고 가던 자전거에서 내려 땀을 식히는 모습인지, 잎이 무성한 왼쪽의 수양버들은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위 속에 정지된 순간의 고요를 느끼게 한다. 마치 물위에 비친 그림자 모습 같기도 한 이 몽환적인 풍경 사진은 해방 이후 초창기 대구 사진계를 대표하던 안월산 선생의 작품이다. 모델의 태도를 포함한 구도상의 특징을 보면 작가의 계획적인 조정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순간의 신비스러운 영상이 불러일으키는 충격적인 매력에 사로잡힌다. 작품에 스며든 모든 미묘한 분위기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며 함께 호흡하고 느끼게 하는데, 삶의 찰나적인 한 순간이 마치 영원한 시간처럼 눈앞에 있다.
문화예술회관 박민영 학예사가 대구사진문화연구소 김태욱 소장과 같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1950, 60년대 사진사를 정리하면서 '사실주의 대 조형주의'라는 테마로 사진이 추구하는 두 가지 미학적 입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시 신문지상에서 벌인 작가들의 논쟁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서 의미를 더하고 있는데,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 근대 사진이 기술적인 발전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의 폭을 확대해가는 중에 겪게 된 충돌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개별 작품들을 양 개념의 도식에 가두어 볼 필요는 없다. 사실주의 사진의 대표라고 하는 구왕삼 선생의 작품에서도 심미적 의도가 보이고 그 상대편에서 현실 반영적 요소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한 사진에 모든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밝은 웃음을 띠고 있다. 왼쪽 끝에 좀 더 어려보이는 한 소년만 예외다. 눈에 들어간 흙먼지를 닦아내려는지 양손을 얼굴에 올려 눈 주위를 훔치고 있는 모습이 방금 울음을 그치려하는 중인 듯 보이기도 하다. 영락없이 연출된 장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에는 순간적인 우연이 들어가 무의식적인 공간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사실주의 사진으로 보이게 한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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