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낭가 파르밧

입력 2009-07-15 10:39:35

초창기 판타지 소설가인 E.R. 에디슨은 1935년에 발표한 소설 'Mistress of Mistresses'의 첫 장에서 낭가 파르밧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적고 있다. "몇 년이 흘렀지만, 낭가 파르밧에 대해 네가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준 것을 기억한다. 너는 수시간 동안 말을 타고 골짜기를 따라 구불구불하게 펼쳐진 울창한 나무숲을 빠져나왔다. 코너를 돌았을 때 펼쳐진 계곡의 모습에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광대한 얼음 절벽이 눈을 멀게 할 만큼 번쩍였고, 1만6천 피트 높이의 봉우리가 한쪽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낭가 파르밧(8,125m)은 산스크리트어로 벌거숭이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8천m가 넘는 산을 오르는 에이트 사우전더(Eight-thousander)들에게는 악마의 산, 킬러 마운틴이라고 불린다. 낭가 파르밧은 1895년 영국의 머머리가 첫 정복을 시도한 이후 58년 만인 1953년 7월 3일 독일의 헤르만 볼에게 첫 발길을 허용했다. 그 사이 31명이 목숨을 잃었다. 14개의 8천m 이상 봉우리 중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에 이어 세 번째로 빨랐지만, 1990년 이전까지는 무려 77%의 사망률을 보일 정도로 인간을 거부했다. 아직도 K2 등과 함께 겨울 등반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80년대 후반부터 몇 차례 실패 끝에 92년 6월 박희택 등이 처음 정상에 올랐다.

지난 11일 여성 산악인 고미영이 낭가 파르밧 정상에 오른 뒤 하산길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8천m 이상 14개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 올해만 칸첸중가(8,586m) 등 3곳에 올랐고, 낭가 파르밧까지 올라 11개를 막 채운 참이었다. 이미 12개 봉우리를 정복한 오은선과 올해 안에 14번째 봉우리를 함께 정복하는 꿈을 그리기도 했지만 이젠 물거품이 됐다.

고미영은 2006년부터 고산 정복에 나서 3년 만에 12곳에 올랐다. 올해만도 7개의 봉우리에 오를 계획이었다. 처음 이 산에 올랐던 독일의 헤르만 볼은 자서전에서 "내 생애는 당신을 만나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내가 아직 당신을 몰랐을 때에도 모든 것은 그 준비였습니다"라고 원정대에 포함됐을 때의 마음을 적고 있다. 고미영이 조금만 속도를 늦췄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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