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 읽어주는 남편

입력 2009-07-15 07:00:00

허정도 지음/예담 펴냄

남편은 아내에게 책을 읽어준다. 부부는 50대다. 함께 책을 읽는 동안 부부는 등장인물들의 행로를 따라 어린 시절의 한 장면으로 돌아가고, 살아오면서 만났고 헤어졌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떠올리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기도 하고, 멀지 않아 다가올 '늙은 날들' 대해 생각한다.

책 읽어주는 남편과 남편의 다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아내의 모습이다.

"아직 지난 시간을 이야기할 만큼 오래 살지는 않았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아내와 함께 지내온 시간들과 지금까지 보고 겪은 일들, 살아오면서 인연 맺었던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놀이나 취미는 별로 없다고 한다. 지은이는 우연한 일로 아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니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놀이나 취미는 별로 없다'는 말에 '방점'을 찍게 됐다고 말한다. 늘 되풀이되는 자식 이야기, 빤한 정치 이야기, 답답한 돈 이야기가 아니라 책을 읽고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감성을 나누게 됐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아내에게 읽어주었던 여러 책들 중에서 스무 권을 선별해 이 책에 소개하고 있다. 굳이 스무 권을 택한 이유는 '주제와 감동이 내 삶과 연결되었거나 평소 소중하게 여기는 인연을 떠올려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 '책 읽어주는 남편'은 지은이가 읽었던 책의 감명 깊었던 문장과 더불어 지은이 자신의 삶과 생각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

"결혼하기 전날, 아버지가 내게 한 말씀 주셨습니다. '장가 들면 부인에게 말을 높여라. 반말하면 욕하기 쉽고 욕하면 손 가기 쉬우니 처음부터 말을 높여라.' 어머니와 부부싸움이 잦았던 당신처럼 살지 말라는 뜻이 강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당부하신 말씀이라 지키고는 있지만 살다보면 편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도 아들에게 똑같은 말을 해줄 생각입니다."

"소리를 내어 책을 읽으니 눈으로 읽을 때보다 시간이 조금 더 드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책 내용이 머릿속에 잘 들어올 뿐 아니라 감동의 깊이가 달랐습니다. 듣는 아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내심 흐뭇했습니다. 무엇보다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 된 점이 큰 소득이었습니다. 느릿느릿 고요하게 흐르는 시간, 맛깔스러운 낭독의 기쁨, 그 맛있고 행복한 시간을 꼭 한번 경험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어른들의 독서라면 흔히 소리 내지 않고 홀로 읽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은이는 소리 내어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책읽기의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부로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남편과 아내, 이 멀고도 가까운 사람들은 함께 살지만,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 관심사도 다르고, 낼 수 있는 시간도 다르다. 하루에 이십분 혹은 삼십분이라도 아내와 남편이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생각보다 좋을 것이다. 어쩌면 함께 책을 읽는 동안 지금까지 몰랐던 아내와 남편의 새로운 표정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책을 함께 읽고 들으면서 산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습니다. 소리 내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내를 만난 것과 더불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지은이의 말이다.

248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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