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대학과 책]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

입력 2009-07-15 07:00:00

오카모토 다카시 /강진아 역(소와당, 2009)

내년이면 일제에게 국권을 상실했던 1910년이 100주년을 맞게 됩니다. 역사가 현재의 거울이자 미래를 여는 열쇠라는 점을 생각하면 회상할 것도 준비할 것도 많습니다. 분하기도 하고 때로 아득하기도 하여 스스로 마음 가다듬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그때와 비교하면 현재의 한반도 모습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 환골탈태(換骨奪胎)하였습니다. 당시 청과 일본의 재정 수입이 대략 1억냥에 달했는데 비해 조선 정부의 재정 수입은 30만냥에 불과했습니다. 근대화가 무엇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서 제국주의 쟁탈전의 와류에 휩쓸렸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한국 모습을 '기적'이라고 하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OECD회원국으로 세계 10대 무역대국이자 G20그룹의 국가가 된 한국이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같은 자리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논의하고 있다는 자체가 그야말로 '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35년간의 상실, 그리고 반쪽의 독립과 반쪽의 자주로 다시 시작한 역사는 여전히 반쪽의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수많은 식자들이 역사를 전후로, 안팎으로 뜯어보고 있지만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 열강들과 비교하면 결코 작지 않은 땅덩이, 인구 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늘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보였던 한반도, 결국 비교적 시각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너무 큰 중국과 너무나 교활한 일본이 주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 말의 수필가 사조제(1567~1624)는 '오잡조'(五雜俎)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오랑캐(夷狄) 여러 나라 중에 조선보다 예의를 중시하는 나라는 없고, 교지(交趾)보다 비옥한 땅은 없다. 달단보다 사나운 사람은 없고, 왜노(倭奴)보다 교활한 사람은 없다." 사나운 달단인 몽골인과 교활한 왜노인 일본인을 거대한 명나라조차 두려워했다는 말입니다. 한반도는 이들 모두들과 조우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원의 등장과 고려, 원명 교체와 조선의 등장, 명청 교체와 조선의 선택, 그리고 임진왜란까지 얽혔습니다.

이러한 한반도의 400년 역사와 주변국 관계를 "속국자주", "독립자주"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이가 있습니다. 오카모토 다카시(岡本隆司) 교토부립대학(京都府立大學) 교수입니다. 전후 세대(1965년생)인 그는 조선이라는 연구 대상을 중심으로 명나라 이후 400년간의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그려냈습니다. '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소와당, 2009)이 바로 그 결과물입니다. 그의 논리는 명나라 이후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책의 서두는 명이 조선에게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여했다는 이야기부터 언급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동아시아 국제정치를 조선을 두고 경쟁하는 중국과 일본 두 게이머의 활약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몽골제국이 정복하지 못한 두 지역, 일본과 유럽을 같은 수준으로 배열시킴으로써 일본을 중국과 대등한 관계로 규정합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을 임진왜란이 아니라 명일전쟁(明日戰爭)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전후세대 젊은 학자다운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논지 전개를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글을 읽다보면 군데군데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가슴 뜨끔한 내용도 있습니다. 명나라에 대해서는 사대관계를, 여진과 일본에 대해서는 교린관계를 맺고 있던 조선이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사대교린관계를 변화시켰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은 속국자주노선을 거쳐 독립자주노선으로 정책을 바꾸어 나가지만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맞추어 조선이 선택했던 독립의 기획은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정리합니다. 이 책이 가지는 또 다른 묘미는 번역에 있습니다. 저자의 듬성듬성하고 간결한 글에 역자인 강진아 교수가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자칫 소홀하기 쉬운 부분에 꼼꼼하게 각주를 달아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조선이 못다 이룬 독립의 기획을 대한민국을 수립한 한국인이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가'라는 역자의 반문, 반전입니다.

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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