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 로리센스 지음/이창식 옮김
이 소설은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시신에 붙은 마지막 고깃덩어리다. 그러니까 달리가 조지 해리슨이라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짜 콧수염을 한 올 당 5천달러를 받고 팔아먹었듯, 이 소설 속 주인공이자 지은이 역시 '달리 전문가 행세'를 하며, 달리의 치솟는 명성을 이용해 돈벌이에 매진한 인간이다.
소설은 신성한 달리의 성체를 뜯어먹었던 사람들에 대해, 그의 피를 빨아 마신 미술시장의 화상과 중개인, 돈다발이 아니라 비싼 그림을 집 벽에 걸어두고 싶어했던 VIP 고객들에 대해, 중개상과 고객 사이의 유착에 대해, 달리의 말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나쁜 사람이라고 싸잡아 말하기는 어렵다.)
소설에는 달리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모사했던 조수, 양성애 상대, 전용 미용사, 사진사, 애인, 달리 미술관 건축가 등이 등장한다. 이들 모두는 실제 인물이다. 그들 모두는 달리 곁에서 달리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 사람이다. 물론 달리 역시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그림 값을 올리고, 사기 행각을 펼쳤다.
이 소설의 지은이 역시 달리가 살아있던 시절 그의 주변에 얼쩡거리며, 달리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 달리가 죽자 지은이는 죽은 달리를 팔아먹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그러니 결국 이 소설은 '달리의 시신에서 뜯어낸 마지막 고깃덩어리'에 해당한다.
나(소설의 주인공이자 지은이)는 작은 잡지사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유명인들의 가짜 인터뷰 기사를 썼다. 벨기에 뒷골목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수동 타자기와 이런저런 신문과 오래된 잡지를 재구성해 만든 가짜 기사였다. 그러나 기사는 내가 마치 미국 할리우드에서 유명인들을 진짜 인터뷰하고 쓰는 것처럼 보도됐다. 가짜 인터뷰 기사 덕분에 잡지의 인기는 높았다. 내가 가짜로 인터뷰한 사람 중에 유명한 화가 달리도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사진이 표지 모델로 나왔을 때 잡지는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워런 비티나 더스틴 호프먼, 우디 앨런이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모델로 했을 때보다 달리를 모델로 했을 때 더 많이 팔렸다. 달리가 잘 팔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달리를 이용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가짜 인터뷰 기사덕분에 나는 어떤 큰 회사의 미술품 상담사와 중개인으로 일하게 됐다. 당연히 나는 달리를 팔아먹고 살기로 결심했다. 달리는 팔리니까 말이다. 나는 미술에 대해서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오직 달리의 작품만, 달리의 모사품만, 팔아먹기로 작정했고, 달리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 모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나는 달리 전문가로 통했다.
나는 달리의 가짜 그림을, 모조품을 싼값에 사들여 비싸게 팔았다. 달리의 그림을 사려는 고객은 넘쳤다. 그들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값이 비싼 그림일수록 진짜에 가깝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지불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비싼 값에 팔았다. 돈을 벌 때는 차갑게 긁어모아야 함을 나는 알았다.
고가의 미술품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 이 소설은 차갑게 평가한다.
"부자들은 천박해 보이지 않게 자신의 부를 자랑할 할 필요가 있거든. 그렇다고 돈을 벽에다 걸어둘 수는 없지 않나?"
투자 목적으로 그림을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투자나 돈세탁에 관심이 있는 고객들을 이렇게 꼬드겼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값은 1970년부터 1975년 사이 연간 평균 25.94 퍼센트 상승했죠.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해요. 달리가 사망하면 그의 그림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겁니다. 한계는 하늘이죠."
부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표정으로 그림을 사갔다. 대부분 현금이었다.
화가 달리는 천부적인 예술가인 동시에 시대를 이용하고 조롱했던 마케팅의 귀재였다. 미술품 역사상 그의 그림이 가장 많이 날조됐다. 물론 그 책임의 대부분은 달리 그 자신에게 있었다. 그는 날조한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수를 시켜 모사품을 잔뜩 만들어냄으로써 자신의 그림 값이 치솟는 것을 즐겼다.
그는 평생 미술계를 기만했다. 호색한, 사기꾼, 돈벌레로 불리기도 했다. 676개의 각기 다른 서명을 갖고 자신의 전문 조수가 그린 모사품에 서명을 해 세상을 속이기도 했다. 그래서 달리의 작품은 3/4이 가짜라는 이야기도 있다.
스스로 조수를 시켜 모조품을 만들었던 달리는 특별한 예술혼을 가졌던 괴짜 천재였을까. 시대를 이용한 마케팅의 귀재였을까.
화가 달리의 예술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고 그는 그런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프린트한 자신의 그림에 하루 종일, 볼펜이 다 닳도록 사인을 하고, 자신의 친필 사인을 명분으로 비싼 값에 팔았다.
예술은 원래 사기라고 한다. 사기 중에서 고급 사기라고 한다. 잘 속일수록 고상한 대접을 받고, 돈도 많이 번다. 화가뿐만 아니라 시인 소설가 역시 고급 사기꾼들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지은이 스탠 로리센스 역시 사기꾼이다. 그는 런던의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장, 뉴욕과 파리 등 곳곳에서 미술품 사기 행각을 펼쳤다. 나중에는 붙잡혀 교도소에 다녀왔다. 그리고 그 감옥 체험까지도 소설로 써서 팔아먹는다.
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진실은 가치 있고 거짓은 무가치한 것일까. 진실은 이롭고 거짓은 해로운 것일까. 진짜 예술 작품은 무엇이고 가짜 예술 작품은 또 무엇일까.
이 소설은 최고의 예술적 재능과 사기 재능으로 미술계와 세상을 우롱한 화가 달리의 말년에 대한 보고서이자, 결과적으로 달리의 '꼬붕'으로 또다시 세상을 우롱하고 있는 작가 스탠 로리센스의 인생 보고서이자 '돈벌이 전술'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의 발상 혹은 시작은 흥미롭지만 전개 방식은 지루하다. 356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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