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영어 연습벌레

입력 2009-07-13 07:00:00

아들 녀석이 백화점의 큰 현수막에 적힌 문구를 보고 왜 백화점에서는 "살래?" 라고 물어보느냐고 했다. 아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학년쯤 되었을 때였다. 알파벳을 소리 나는 대로 가르친 내게 'Sale'이란 단어를 그렇게 읽은 것이다.

그래서 아들 녀석이 언어에 감각이 있는 줄 알았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영어 방목이 시작되었다. 남의 집 아이들까지 다 몰고 다니는 아들 때문에 옆집에서 '그 집 아들 제발 학원 좀 보내라'고 해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엄마의 본업이 영어 가르치는 것이 아니던가! 영어로 가끔씩 말하면 알아듣는 녀석이 대견했고, 소질이 있구나 하고 자율적으로 독립적으로 쑥쑥 실력이 향상되기를 기대했다. 노력도 하지 않고 자식에 대한 무한신뢰로 오늘의 화를 자초한 셈이다. 어설픈 영어 실력이 아들의 아킬레스건이 됐으니 말이다.

요즈음은 연습 벌레를 목표로 삼고 있다. 재능과 운을 뛰어넘는 것이 연습임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과 박지성의 발, 그리고 장인(匠人)이나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옹이진 손마디만 보아도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아마 그 손과 발에서 수없이 많은 시간의 땀과 눈물을 읽을 수 있어서일 것이다.

영어 또한 연습의 미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분야이다. 외국어교육원이나 학교가 지원하는 다양한 영어 관련 프로그램에서 자주 만났던 학생들은 취업을 했거나, 장학금을 받았거나, 해외연수의 기회를 가졌다고 연락을 해온다. 노력의 보상을 참으로 빨리도 받은 행운아들이다. 생각해 보면 작은 집단일수록 비교 대상이 적으니 노력한 결과도 빨리 드러날 것이다.

대학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영어 공부하기에 최적인 이 시기를 영어 연습벌레들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학교도 다양한 혜택을 마련하고 자발적으로 기회를 갖기를 장려하고 있다. 특히 원어민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거주하면서 영어를 익히는 장학 프로그램이 있는데, 나는 이를 연습벌레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있다. 원어민 교수들과 연구수업까지 하면서 수업 내용을 구성하긴 했지만,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저녁 8시반이 되어야 끝이 나는 강행군이다. 잘 버텨만 준다면 이 과정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이 이번 여름방학을 통해 영어 연습벌레로 거듭날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취업과 승진, 업무를 위해 영어를 피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나 역시 기꺼이 연습벌레로 살 것이며, 학생들 또한 연습벌레가 되어주길 강력히 희망한다. 어머니로서는 아들의 영어를 유창하게 할 기회를 놓쳐 유감이 많지만, 학생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다. 노력하는 1인자로 기회 또한 일순위로 잡을 많은 연습벌레 제자들을 배출하고 싶다.

대구가톨릭대 외국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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