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서의 대중문화 일기] 트리플, 드라마의 리얼리티

입력 2009-07-11 07:30:00

평소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살펴보는데 소홀해서는 안 되지만 코미디와 연예 오락 전문이라 그런지 드라마는 좀 견디기 힘들다. 코미디, 연예 오락의 경험과 드라마의 경험이 전혀 다른 형식이라 그런가 싶다. 아무래도 드라마는 만드는 쪽에 있어서나 보는 쪽에 있어서나 더 길고 깊은 호흡을 요구하니 말이다. 그래도 가끔은 견디고 보게 되는 드라마가 있다. MBC '트리플'이 이런 드라마다.

국민여동생 김연아의 이미지를 밥벌이 수단으로 삼는다는 오해 때문에 처음엔 말도 많고 그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재미있고, 그림 좋고, 구성 좋고, 캐릭터 훌륭하고, 감수성은 세련되었다. 젊은 날의 기름기가 빠진 이정재(신활)의 담백한 연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고, 약간은 딱딱하고 어색한 듯하지만 오히려 전체 분위기에는 잘 어울리는 민효린(하루)의 연기도 공감이 간다. 윤계상(현태)의 밝고 자유롭고 가벼운 분위기, 최백호의 놀라운 연기력, 이선균(해윤)과 김희(상희)가 그려내는 선명한 캐릭터. 아무튼 '트리플'에는 이러한 즐거움과 미덕이 담겨져 있다.

시리즈가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자마자 치정극으로 얽혀가는 모양새가 마뜩지 않기는 하다. '트리플'의 세계는 정말 좁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는 지나치게 복잡하다. 이정재에게 민효린과 이하나(수인)가 매달려 있고, 민효린에게는 송중기(풍호)가, 이하나에게는 윤계상이 달려 있다. 윤계상은 이정재의 친구로 나오고, 이하나는 이정재의 부인으로 나온다. 민효린은 이정재의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의붓동생이다. 이렇게 엉킨 관계 탓에 막장 캐릭터, 볼 것 없는 치정극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렇게 좁은 세상에 엉킨 관계를 끌어가고 있는데도 '트리플'의 캐릭터들은 아이스링크의 얼음판만큼이나 '쿨'하다. 저런 관계 속에서 저런 마음으로 살면서도 저렇게 '쿨'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렇게 서늘한 성격들 탓에, 질척거리거나 끈적대지는 않는다. 더구나 중간중간 민효린의 목소리로 보이스 오버되는 내레이션은 보여지는 모든 것들의 시제를 과거로 돌림으로써 일종의 안도감을 준다. 물론 열여덟 진하게 사춘기를 겪는 한 소녀의 시선이라는 전제 또한 이러한 안도감에 기여한다.

드라마의 세계는 가상적이다. 그 세계는 만들어진 것이고, 그런 한에서 우리가 사는 이곳만큼 넓고 클 수 없다. 드라마의 리얼리티는 우리들의 세계에서 느끼는 실재감과는 다른 것이다. 물론 드라마의 리얼리티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어차피 허구인 탓에 한 꺼풀 접어주기는 하지만, 얼마나 기껍게 접어주느냐는 드라마 하기 나름이다. 이것이 드라마의 설득력이다. 드라마의 설득력은 한편으로는 만드는 쪽의 능력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는 쪽의 마음이다. 보는 쪽에서는 드라마의 세계를 헤아려야 하고, 만드는 쪽에서는 그 마음에 주파수를 맞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둘이 만나는 곳에서 '설득'이 이루어진다.

'트리플'은 다른 드라마들보다 더 큰 설득력을 필요로 한다. 지나치게 복잡한 관계와 유례없이 쿨한 캐릭터라는 이 드라마의 두 축은 애초부터 '리얼함'과는 거리가 먼 조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트리플'은 조금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관계가 복잡해져 감정의 온도가 상승할수록, 더욱 쿨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딜레마다. 이러한 모순이 깊어질수록 설득력은 힘을 잃고 현실은 더욱 멀리 달아나 버릴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영화와 다르다. 만들어진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있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때문이다. 그만큼 드라마는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물론 소통이란 드라마의 '설득력'과 관계된다. 모처럼 볼 만한 드라마를 만났다. 소통에 성공해서 설득력 있게 마무리하기 바란다.

(대구가톨릭대학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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