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예술 산책]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죠스

입력 2009-07-11 07:30:00

해 저문 바닷가.

20대들이 불가에 모여 앉아 젊음을 불태우고 있다. 한 쌍의 남녀가 눈이 맞았다. 여자는 일어나 모래밭을 달려간다. 남자도 일어나 그녀를 따라간다. 바다를 향하던 여자는 옷을 훌훌 벗더니 급기야 전라의 몸으로 바다에 뛰어든다. 바다는 달빛을 받아 더욱 낭만적이고, 여자는 무용수처럼 그 바다 위를 헤엄친다. 바다 밑에서 본 여자의 몸은 어디 하나 의지할 곳 없이 일렁인다. 불길한 음악이 흐르고, 곧이어 여자는 깜짝 놀란다. 물고기에 스친 듯 놀라던 여자가 물속으로 빨려가고, 찢어지는 비명이 조용하던 밤바다를 깨운다.

26세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죠스'(1975)의 첫 장면이다. 젊음과 낭만, 풀어헤친 에로틱의 바다가 일순간 죽음의 공포로 변하는 것을 스릴 넘치게 보여주었다.

무시무시한 상어의 대명사가 된 '죠스'. 이젠 샤크(shark)라는 단어보다 상어의 턱주가리를 뜻하는 죠스(jaws)가 상어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놀라운 연출이 빚어낸 현상이라고 해야 할까.

해양공포 영화의 대명사가 된 '죠스'는 스필버그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TV영화 '듀얼'(Duel)과 첫 극장용 장편영화 '슈가랜드 특급'을 만든 불과 26세의 무명 감독으로서는 놀라운 흥행 성적을 보였다. 할리우드 영화 사상 최초로 흥행 수익 1억달러를 돌파했다.

무엇보다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음악과 극적인 구성, 놀라운 화면 효과 등이 여름 바다를 대할 때마다 떠올리는 대표적인 납량용 영화로 기억나게 한다.

'죠스'가 개봉되기 전에도 이미 해양 공포를 그린 영상물들이 극장에 내걸리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동네 극장에서 흑백 다큐멘터리 '백상아리'를 보고 바다에는 바다 거북과 문어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상어를 가공할 공포의 대상으로 그려준 첫 영화였다.

'죠스'는 대단히 상업적인 해양소설이다. 피터 벤칠리(1940~2006)는 작은 해변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는 거대한 식인 백상어의 이야기를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엮어 공포와 에로가 가미된 흥행소설로 엮었다. 그는 '죠스' 외에 '버뮤다의 공포' 등을 쓴 해양소설 전문 작가다. 영화가 나오기 전 우리나라에는 원제에 맞게 '아가리'라는 이름으로 출간됐고, 영화의 성공 이후에는 '죠스'라는 이름으로 나와 대성공을 거뒀다. 미국에서만 550만 부가 팔렸다.

어릴 때 '죠스'를 읽은 후 오랫동안 기억되는 것은 의외로 에로틱한 내용이었다.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지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물론 스필버그는 영화에서 이런 부수적인 에피소드는 모두 지웠다.

대표적인 것이 브로디 서장(로이 샤이더)의 아내 엘렌(로레인 게리)과 해양학자 후퍼(리처드 드레이퍼스)의 은밀한 관계다. 영화에서는 명랑하고 쾌활한 캐릭터이지만, 소설에서는 상당히 고뇌하는 학자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엘렌은 도시에서 살다가 남편을 따라 시골 해변마을에 정착하는 바람에 욕구불만에 싸여 있다. 상어의 공포가 휘몰아치면서 마을에 들어온 신선한 젊은 피. 거기다 남편은 상어에 미쳐 가정일도 팽개치고 있다.

혼자 사는 후퍼도 외롭기는 마찬가지. 유혹의 손길은 엘렌이 먼저 뻗친다. 저녁을 함께 하자며,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수㎞ 떨어진 이웃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만난다. 이미 만나기 전부터 엘렌은 속옷을 사고, 향수를 사는 등 뜨거운 하룻밤을 예상한다. 화장실에서 팬티 속에 향수를 뿌리며 일탈의 기대에 부푼 엘렌, 그리고 식사 도중 자연스럽게 성적인 농담과 주제로 후퍼의 성감대를 자극한다.

벤칠리는 상어의 공포에서 벗어난 이 에피소드를 여러 쪽에 걸쳐 묘사하고 있다. 엘렌의 상상과 혼잣말을 통해 유부녀의 바람기와 은밀한 욕망에 독자를 흠뻑 젖도록 만든다. 소설을 읽은 이들은 왜 브로디 서장이 얼마나 꽉 막힌 사람인지, 얼마나 주위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지 엘렌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외 소설과 영화가 다른 몇 장면이 있다. 소설에서는 후퍼가 바다 속 쇠창살 안에 갇혀 죽지만, 영화에서는 산호 속에 숨었다가 살아나온다. 상어 작살잡이 퀀트(로버트 쇼)도 영화에서는 죠스의 입 속에서 죽지만, 소설에서는 작살 밧줄에 매달려 죠스와 함께 최후를 맞는다.

가장 다른 것은 죠스의 최후. 소설은 헤엄치지 않으면 질식하는 상어의 특성을 이용해 강력한 부력의 통을 매달아 지쳐 죽도록 하지만, 영화에서는 산소통을 물고 있다가 브로디 선장의 총격에 의해 폭발해 죽는다.

불협화음처럼 둥둥거리는 음악 또한 일품이었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존 윌리암스의 테마 음악은 마치 효과음처럼 긴박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은 당시 디스코 뮤직의 열풍 속에도 순수 영화 음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앨범 차트 30위까지 올랐다.

벤칠리는 자기 소설로 인해 백상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나빠져 많이 괴로워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상어에게 희생당하는 사람들 수는 연간 10여명. 반면 독사에 물려 죽는 이들은 수만명에 이르고, 인도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이들만 해도 매년 300명에 이른다고 한다. 1975년 '죠스'가 개봉된 후 세계의 각 해수욕장 피서객이 크게 줄었다니 '죠스'가 몰고 온 '상어공포 증후군'을 상상하게 만든다.

P.S. 공포는 늘 에로와 짝패를 이룬다. 수많은 공포영화에는 늘 젊은 여인들의 나신들이 도끼 자루만큼이나 많이 나온다는 사실. 벗은 몸과 노출된 공포는 그만큼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죠스'의 포스터. 거대한 죠스의 아가리 앞에 놓인 여인의 나신. 원작의 에로틱한 내용을 과감하게 삭제하는 대신, 그 이미지만 한 장으로 보여준 스티븐 스필버그의 탁월한 감각, 놀랍지 않은가.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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