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재밌게 하고, 만족스러우니 지금이 전성기"…배철수

입력 2009-07-11 07:30:00

라디오 DJ 20년 '송골매' 배철수

"제가 뭐 '인터뷰거리'가 됩니까. 할 얘기도 없는데…."

배철수(56)는 진솔했다. 맑았다. 인간미가 엿보였다. 삶의 철학이 있었다. 소박하고도 진중했다.

그는 진정한 예술가를 꿈꾸는 음악인이었다. 영혼을 담은 음악을 동경한다. 그는 또 '재미있는 삶'을 추구한다. 그런 삶은 자신이 바라는 삶이었다. 거창하지 않은 삶이다.

"부친이 의사인 한 사람의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부모의 뜻에 따라 의과대를 졸업했고, 그 뜻에 따라 의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유학시절 자취방에 친구들을 초대해 밥과 요리를 대접했는데, 친구들이 종종 '너무 맛있다'고 했답니다. 그는 행복했습니다. 그는 부모 몰래 요리학원에 다녔고, 요리사가 됐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찾은 것이지요."

배철수는 "부모 뜻을 따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에게 의사와 요리사의 길 가운데 어떤 길이 더 행복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의 소중함을 얘기했다.

그에겐 초교 5년, 고교 2년생 두 아들이 있다. 두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 그리고 그 삶을 재미있게 살기'를 바란다.

그는 인터뷰 초반에 잠깐 외부 전화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아파트 광고는 하지 않습니다." 기자는 궁금했다. 인터뷰를 끝낸 뒤 1시간 전의 '전화내용'에 대해 물었다. '아파트 광고모델을 하지 않겠다는 전화였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내가 살지도 않을 주택에 대해 '좋다'고 할 수 있겠느냐. 무엇이 좋은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했다. 그럴듯했다.

라디오 방송(음악캠프) 20년째를 맞고 있는 송골매, 배철수를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배철수가 보는 음악

-음악의 조류가 어떻게 흘러왔다고 보십니까?

"클래식 음악은 18, 19세기가 전성기였습니다. 베토벤, 모차르트, 바하, 슈베르트를 능가하는 음악인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팝음악에서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의 뒤를 이을 인물이 앞으로 나올지 궁금합니다."

-70, 80년대와 현대 음악을 비교한다면.

"국내 대중음악은 70, 80년대가 최전성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대의 대중가요도 나름대로 장점은 많습니다. 하지만 '장비'의 힘을 너무 많이 빌린다고 봅니다. 1년에 라이브 한두번만 하더라도 '가수'라고 부릅니다. 가사도 '감각적'인 면에 쏠려 있고, '영혼'을 담은 음악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요즘은 '엔터테이너'라는 의식이 강하고 음악가, 예술가란 의식이 미약합니다. 70, 80년대 대중음악은 가창력과 영혼을 담은 음악이 대중을 폭넓게 사로잡았지요. 당시 팬들도 음악을 '치열하게' 들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을 어떻게 보십니까?

"인종을 초월한 슈퍼스타였습니다. 이전에 뚜렷이 나눠졌던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을 통합했습니다. 장르도 뛰어넘었습니다. 그의 '스릴러' 음반에는 '록'적인 요소도 담고 있습니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을 가미해 음악의 영역도 크게 확장했습니다."

◆음악, 그리고 보람

-음악과의 첫 인연은.

"중·고교 때 기타가 외로움을 달래주던 친구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뒤 곧바로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지요. '활주로 6기'입니다."

-초대손님이 말이 없어 진행이 막힐 때는 어떻게 하나요? 비결이 있나요?

"솔직한 것이 최고라고 봅니다. 어색한 상황을 억지로 넘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지요."

-기억에 남는 팬레터나 선물은.

"송골매 초창기 시절, 팬레터를 받으면 꼬박꼬박 답장을 했지만, 어느 순간 양이 한계를 넘었습니다. 지금은 음악캠프 청취자가 보내준 제 '캐리커처'를 스튜디오 안에 붙여놓고 있습니다. 생긴 만큼이나 좀 멍청하게 보이죠?(하하)"

-음악프로그램 진행을 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이라면.

"'콘서트 7080'은 자연스럽습니다. '우리세대' 음악을 우리세대가 모여 노래하고 얘기하기 때문에 꼭 동창회 하듯 편하게 진행합니다."

"하지만 '음악캠프' 진행은 두렵고 조심스럽습니다. 청취자들을 밖에서 만나보니 '중·고교 시절 음악캠프는 내 친구였다' '매일 들었는데, 큰 영향을 받았다'는 등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20, 30대들의 생각이나 사상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보람도 느끼지만, 두려운 생각이 앞섭니다. '내 진행이 이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야 할 텐데'라며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과거로의 여행

-청소년기는 어떻게 보냈습니까?

"부친 고향이 평남 평원군인데, 해방 직후 월남했지요. 어렵게 살았습니다. 저도 초등학교를 세번 옮겼습니다. 집안이 많이 쪼들렸죠. 흑석동, 본동, 전농동, 상계동, 회기동, 금호동 등 단칸 셋방을 전전했습니다. 고3 때는 친구 집에서 지낸 적도 있었고, 대학 때부터 '독립'했습니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일은.

"음악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공부하고 싶습니다. 기타도 더 잘 치고 싶고, 피아노도 어릴 때부터 배우고 싶습니다. 드럼도 마찬가지이고요. 대학 1학년 때 '활주로'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해변가요제에 나가게 됐는데, 밴드 멤버 가운데 드럼 치던 친구가 군에 간 바람에 제가 드럼을 맡게 됐지요."

"젊을 때 음악에만 관심을 쏟은 바람에 제대로 된 연애도 한번 해보지 못했습니다. 옛날로 돌아간다면 연애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도 '여자들한테 잘해줘라'고 합니다.(하하)"

-지금까지 못 이룬 꿈은.

"청소년 시절 셋방살이를 전전하다 보니, '빨리 돈 벌어서 가족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집 한칸 마련하고 싶다'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꿈을 이룬 셈이지요."

"꿈을 다 이뤘다고 한다면 건방진 얘기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 재미있게 하고, 만족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볼 때 지금이 가장 전성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악 친구와 선배

-'송골매' 구창모와는 어떻게 지냅니까?

"가끔씩 봅니다. 밴드에서 헤어질 때도 개인적인 감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친하게 지냅니다. 단지 저는 방송 때문에, 구창모는 사업 때문에 나름대로 바쁩니다. '송골매 10집 앨범을 만들고 난 뒤 음악활동 중단을 공식화하는 것이 어떠냐'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농담이 진담이 될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농담입니다. 아직 실행에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농담일 뿐이죠. 글쎄요.(농담에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였다)"

-어려울 때 가족 외에 가장 먼저 찾을 이는?

"아마 최백호 선배일 것입니다. 연예인축구단에서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가까워졌습니다. '의리 있는 사나이'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힘이 되어줄 인생 선배로 믿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인은.

"신중현, 조영남, 최백호 선배 등을 좋아합니다. 신중현 선배는 '신중현과 엽전들' 밴드 등을 통해 솔 뮤직을 시도하고, 한국적 록의 씨앗을 뿌리는 등 가요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조영남 선배는 노래, 미술 등 다방면에서 '어떻게 그렇게 다재다능할 수 있는지' 부럽습니다. 최백호 선배의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핑 돌' 정도입니다. 조용필, 전영록 등은 가요 애호층의 폭을 크게 넓히고, 음악을 통해 생활의 위안을 준 음악인으로 봅니다."

◆아내와 자식

-아들에게 '어떤 사람이 돼라' '어떻게 살아라'고 하십니까?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되도록 간섭하지 않습니다. 단, '재미있게' 살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재미있게 살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사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공헌하라'는 등의 거창한 삶을 주문하며, 주입시키길 싫어합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재미있게 살면 그것이 바로 사회에 공헌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할 시간이 있습니까?

"가장 미안한 부분입니다. 함께 밥을 먹을 시간이 없습니다. 아침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아내도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출근하고 난 뒤 혼자 남습니다. 저녁도 매일 음악캠프를 진행하기 때문에 오후 9시쯤 집에 들어가면 혼자 밥을 먹지요. 대신 휴일 낮에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거나 외식을 함께 하려고 노력합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배철수는?

1953년 서울 출생. 경희중·고, 한국항공대 졸업. 대학에서 그룹 '활주로' 멤버(1978~1979), 그룹 송골매 결성 및 활동(1979~1991). 송골매 음반 1~9집. 제1회 동양방송(TBC) 해변가요제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로 인기상. 제2회 MBC 대학가요제 '탈춤'으로 은상. 현 MBC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DJ(20년째), KBS1TV '콘서트 7080' 진행(5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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