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의 친구, 청담동 출신, 전직 스케이트 선수에 현 한국빙상연맹 서울지부 이사…,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러 수식어를 갖고 있는 남자 이진성(33)이다.
이진성은 2007년 MBC 일일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를 끝으로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췄다. 연기자로, 가수로, 예능인으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그가 갑자기 활동을 중단한 것이다. 그가 직접 운영하는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그간 미국에 갔다 왔습니다. 스케이트 선수 생활을 하며 세계대회와 전지훈련 등으로 외국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이상하게 미국에만 가보질 못했어요. 미국에 있는 친구들도 만날 겸 미래에 대한 구상도 할 겸 미국으로 떠났죠."
이진성은 미국행을 택하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그에게 맞는 것인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서른을 훌쩍 넘긴 이진성은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영어도 배우고, 미국에서의 사업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봤죠.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유를 갖고 내 자신을 돌아봤고요.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죠."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 방송계 복귀. 한때는 회의를 가졌던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그의 적성에 맞고 즐거운 일인지를 깨달았다. 이진성의 입국 소식이 퍼져나가자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제작사 등에서 알음알음 연락이 왔다.
이진성은 그 가운데 17일부터 방송되는 케이블 채널 tvN 드라마 '압구정 다이어리'에 출연을 결정했다. 강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성들의 사랑과 우정,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은 드라마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압구정 홍반장' 역을 맡았다. 캐릭터 이름만 들어도 이진성의 이미지와 사뭇 어울린다. "원래 본인의 모습대로 연기를 하면 되겠다"고 하자 그는 반박한다.
"특별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저에 대해 보통 떠올리시는 이미지는 편견이에요. 전 재미있게 놀았지 막놀지는 않았고, 유쾌하게 즐겼지 속이지는 않았습니다. 한 두
번 저의 모습을 보고 판단을 하니까 아쉬움이 커요."
자신의 말대로 이진성은 만나기 전 이미지와 만난 후 이미지가 사뭇 달랐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그는 어둑어둑해지자 레스토랑 야외에서 바비큐 도구를 차려놓고 소시지를 구워 손님들에게 직접 돌렸다. 주문도 받고 서빙도 했다. 한 마디 한 마디 말에도 예상 외의 진중함이 묻어났다. 옆에 앉은 매니저가 이진성의 본모습에 대해 한 수 거든다.
"진성이 아버지가 참 엄해요. 아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밤늦게까지 밖에 있지도 못하게 하고 어른들 앞에선 짧은 옷도 못 입게 하시죠. 진성이는 그런 가풍의 테두리 안에서 지킬 것은 지키고 놀았어요. 사람들 생각과는 많이 다르죠."
2남 2녀 중 막내인 이진성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있는 집 자식'인 것은 맞지만 졸부 집안의 철없는 막둥이는 아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 아버지는 엄격한 가풍 속에서 이진성을 길렀다. 이진성은 지금도 아버지가 어렵다고 했다.
막 쓰고 놀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경제관념도 투철하다. 스스로 "돈 걸린 일이면 뭐든지 잘 한다"고 할 정도로 이재에 밝다. "선수 시절, 상금을 타기 위해 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고도 말하는 그다.
스케이트 선수 시절에도 그는 남다른 승부욕을 불태웠다. 1994~1996년 주니어 대표 선수로 활약했고 메달도 꽤 땄다. 2004년까지는 빙상 지도자로 활동했다. "비인기 종목 선수라 서럽기도 했다"면서도 그는 빙상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쏟았다. 그 결과 이진성은 최연소로 한국빙상연맹 이사 직함까지 얻게 됐다. 스스로 "돈 안 되는 감투는 참 많이 갖고 있다"지만 그 또한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위계질서가 투철한 운동선수 생활을 해 온 만큼 이진성은 윗사람에게 깍듯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엄격하다.
그러다 가수 싸이의 친구로 2002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다. 호루라기를 불며 춤을 추는 퍼포먼스 덕에 방송 전파를 타자마자 단박에 그는 '청담동 호루라기'라는 별칭을 얻고 스타가 됐다.
방송에 데뷔 당시 매스컴은 그에게 강남 출신 한량 이미지를 원했다. 항상 나이트클럽에서 놀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진성은 방송을 위해 '놀았던' 경험을 최대한 끌어냈고, 대중은 그를 엽기 댄스를 추는 날라리로 인식했다.
그렇게 시작된 연예인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믿었던 사람에게 이용도 당했다. 또 세상 사람들에게 '청담동 호루라기'라는 별칭이 주는 편견은 단단하기만 했다. 그래서 그는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지금, 미래에 대해 마음을 정리한 그는 한층 성숙한 이진성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후회 없고 행복합니다. 남들은 하고 싶은데도 못하는 일인데 저에겐 어쨌든 기회는 많이 주어지고 있어요.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를 둘러싼 편견도 하나하나 바꿔 나갈 생각이다.
"'청담동 호루라기'라는 별명이 한때는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별명을 통해 저란 사람을 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죠. 어쨌든 인지도는 확실한 것이니까요. 대신 앞으로 조금 더 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셨으면 해요. 제 진정한 모습을 보여드릴 생각이니까요."
일의 행복에 빠진 이진성에게 연애는 아직 소원한 일이다. "누군가 있으면 기다리라고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일단 그 '누군가'가 아예 없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는 이진성. 그는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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