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로 읽는 한권]

입력 2009-07-08 08:30:00

한 친구가 밥을 산다며 9명의 친구들을 중국집에 데리고 갔다. 밥을 산다는 친구는 샥스핀을 먹었고, 밥을 얻어먹게 된 나머지 9명은 그냥 자장면을 먹었다. 메뉴는 달랐지만 어차피 친구가 쏘는 자리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나쁠 리 없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자, 계산을 하겠다는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안한데, 생각해보니 내가 돈이 없다. 계산은 나눠서 하자." 아홉명의 친구들은 조금 황당하긴 하지만 그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모두들 자장면 값 3천00원을 꺼내자 밥을 산다던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1원씩 내야지. 총 10만원이 나왔으니…." 슬슬 짜증이 난 친구들이 이야기한다. "무슨 소리냐. 너는 샥스핀을 먹고 우리는 자장면을 먹었는데 왜 우리가 그 돈을 합산해서 나눠야 하냐?" 밥을 산다던 친구가 이야기한다. "이렇게 나눠서 계산하는 건 다 자장면을 먹은 너희를 위한 거야." 나머지 친구들이 화를 내면서 그게 대체 왜 우리를 위한 계산인지를 캐묻자 그 친구는 대답한다. "난 정말 너희들을 위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는데 너희들이 내 진정성을 몰라줘서 섭섭해."

실제 저런 상황을 겪으면 누구나 분개하기 마련이다. 너무나 상대방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나머지 '혹시 내가 무슨 편견의 늪에 빠진 것은 아닐까' 회의하게 될 정도다. 그러나 아무리 감정을 배제하고 다시 생각해봐도, 저 친구의 행동은 이상하다. 다음부터 저 친구가 밥을 산다면, 그런 자리에는 안 가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자장면 파티를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주류 경제학자' 이준구 교수에 의하면 그 파티의 계산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대학교 교문 앞에서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대학교수에게도 잘 내어주지 않는 크레디트 카드를 대학교 정문 앞에서 수입도 없는 학생들에게 나눠줘 버렸죠." 그 시절 조교를 하던 친구 한명은 카드빚으로 고생하다 결국 학생회비 기백만원을 들고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몇년 뒤 경제는 살아났지만, 그 친구는 아직도 연락두절이다.

이제 우리는 두번째 자장면을 비비고 있다. 다른 사람이 무상 샥스핀을 먹건 말건 우선 공복에 매콤달콤한 슈퍼추경 자장면과 감세 단무지가 목구멍으로 넘어올 모양이니 모두들 싫지는 않은 눈치다. 그런데 이게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 계산될지 예상할 수 없는 나 같은 비관론자는 '뛰쳐나갈 수도 없는 경기부양 파티'에서 벌써부터 좌불안석이다. 내게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같은 책은 그래서 제목부터가 리얼하다.

정부의 한 고위층은 종부세 감면으로 인해 줄어든 조세수입을 재산세를 더 걷어 메우겠다고 말했다. 재산세로 부족한 조세수입을 메울 경우 중산층과 저소득층으로 부담이 전가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재산세를 더 걷지 않는다면 소득세나 부가가치세 같은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98%의 사람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것은 전혀 다를 바 없다.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지음/ 푸른숲/ 327쪽/ 1만5천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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