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아우성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방분권(地方分權)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지방분권에 대한 지방의 위기감은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에서 비롯됐다. 수도권 규제 완화가 모든 자원과 권력이 서울과 수도권, 특정 지역에 몰리는 중앙집권 체제를 더 견고하게 하고, 대구경북을 비롯한 비수도권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신(新)중앙집중화에 대한 지방의 고민과 도전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정부의 '5+2 광역경제권 전략'에 따라 출범한 대구경북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는 지방과 중앙의 협력적 관계 구축을 통해 대구경북의 내생적 도약 방안을 모색하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정당공천제 폐지를 통해 중앙정치 예속에서 벗어나 지방 어젠다 개발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정치분권 논의도 불붙고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 그 이후…
2일 충남 연기군에선 '지방살리기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가칭)지방살리기범국민대회 추진위원회와 수도권과밀반대 전국연대, 수도권규제완화철회협의회가 공동 주최한 이 대회에는 전국 지방분권 단체가 집결했고, 이 가운데 200여명은 정부 및 한나라당에 대한 강력 투쟁을 선포하며 집단 삭발했다. 주최 측은 "분권·균형발전운동 세력을 재규합하고 전국 네트워크를 강화해 이후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집중 정책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항하는 이 같은 지방분권 운동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 대구에서는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에 반발한 지역균형발전협의체 등 71개 단체가 '지방분권·균형발전을 위한 전국회의'를 열었다. 전국회의는 출범 3개월 만에 지방 무시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지방민·지방단체'들의 불만이 처음으로 폭발한 자리였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수도권 기업 환경 개선과 수도권 투자 전면허용 조치를 연이어 발표했고, 또다시 지방의 집단 반발을 초래했다. 지방분권국민운동은 지난해 10월 성명을 통해 "이명박 정부는 세계 금융위기를 이용해 수도권 규제라는 빗장을 모두 걷어치우려 하고 있다"면서 "공장 신·증설을 허용함에 따라 이제 수도권은 난개발과 환경재앙, 비수도권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됐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후 수도권을 제외한 13개 시·도의 지역균형발전협의체는 용역을 통해 '수도권 정책 대응 및 지역균형발전방안'을 마련해 건의했다. 건의 내용은 지방 우선의 정부 재정 지출 운용, 지방 재원 확충 방안 제도화, 비수도권 투자와 기업 지원 확대, 지역 금융 활성화와 자금 유출 방지, 수도권 과밀 해소, 지방 분권 및 지방자치 강화 등 6개 항목 26개 세부 과제로 이뤄졌다.
그러나 곧 발표된 정부 안은 실망스러웠다. 4대 강 살리기 프로젝트 청사진만 제시됐을 뿐 지방재정제도 개편안, 광역발전 추가계획안, 초광역개발권 기본구상안 등 지방에서 건의했던 핵심 내용을 쏙 빠졌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요청했던 지방 기업과 수도권 기업의 법인세 차등화, 수도권 개발 이익의 지방 상생 발전 재원화, 지역발전 인센티브제도 모두 누락됐다.
2일 연기군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조진형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대표는 "당시 정부가 상반기(6월 말) 내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던 지방 살리기 대책은 여전히 깜깜 무소식"이라며 "범국민대회는 이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인 결과"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 대표는 "현 정부는 지방 살리기가 곧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인식이 전혀 없다"며 "이명박 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생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수도권만 살리려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경북 광역경제발전위원회 출범에 거는 기대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한 지방의 위기감이 폭발하고 있는 가운데 6월 22일 출범한 대구경북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에 거는 기대 역시 커지고 있다.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국 7개 광역경제발전위원회 출범은 이명박 정부의 5+2 광역경제권 전략에 따른 것이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추진된 광역경제권 전략은 이명박 정부의 분권 의지가 집대성된 정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권 규제 완화가 지방분권의 위기라면 광역경제권 전략은 다시없는 기회인 셈이다.
광역경제발전위원회는 시·도 간 협력사업 발굴과 광역 계획 또는 시행 계획을 수립해 재원 분담에 관한 사항을 의결하는 중요한 기구다.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공동 위원장을 맡았고, 위원으로는 김재범 UNEP(국제연합환경계획) 한국위원회 대표이사, 노동일 경북대 총장, 류규하 대구시의회 부의장, 박인철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 신일희 계명대 총장, 이상효 경북도의회 부의장, 이용두 대구대 총장, 이인중 대구상의 회장, 이효수 영남대 총장, 정규석 대구대 석좌교수, 최병태 한양대 교수, 최영우 경북상의 회장,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 등 정·관·재계를 아우르는 15명의 인사가 위촉됐다.
대구경북의 수도권 규제 완화 철폐 요구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생을 위한 것이었다면 광역경제권 사업은 대구경북 자력으로 내생적 도약 방안을 마련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광역발전권 계획에는 시·도가 경제 도약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 대구국가과학산업단지, 첨단복합의료단지, 동해안에너지클러스터, 포항외국인부품소재전용단지, 구미 5국가산업단지 등 지역 발전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사업들이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도는 지난해 10월부터 광역경제권 추진팀과 연구단을 구성해 광역경제권 발전계획 수립을 추진해 왔다. 이 계획은 정부와의 조정을 거쳐 8월쯤 확정될 예정이다.
◆정당공천제 폐지의 의미
그러나 이 같은 광역경제권 전략 역시 수도권만 살찌우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구경북에서 수립하는 광역경제권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지역사회와 지방정부가 힘을 합쳐 중앙정부 및 정치권을 설득하고 압박해 나가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이창용 집행위원장은 "광역경제권 사업이 수도권 중심으로 흐르지 않으려면 지역 정치 지도자들의 인식이 확실히 바뀌어야 한다"며 "그러나 중앙 정부와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지역의 목소리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진정한 지방 분권을 위해선 광역경제권 전략을 비롯한 모든 정책에서 중앙 어젠다가 아니라 지역 어젠다를 개발할 안목과 비전, 실력을 갖춘 지방 정치 지도자들이 필요하다"며 "이런 의미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를 통한 정치 분권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당공천제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질적 공천 비리와 정치 부패가 정당공천제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역과 지역민들을 위해 일해야 할 사람들이 소속 정당이나 중앙 국회의원의 이익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특히 17대 국회 들어서는 기초단체장에 이어 기초의원까지 정당 공천할 수 있도록 했고, 이로써 지방 정치가 중앙정치에 철저히 예속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지역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당정치 현실에서 정당이 지방의원을 공천하게 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같은 정치세력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적 동종교배' 현상이 일어났다"며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은 정파의 이익이 아니라 주민의 생활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장협의회, 지방분권국민운동본부 등을 비롯한 6개 단체와 국회지방자치연구포럼 역시 올 3월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폐지를 위한 국민운동본부' 출범식을 갖고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국에서 본격 활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공천이 곧 당선이 되어버리는 현재의 선거제도는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돼 정쟁의 제물과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하는 위기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며 "지방자치 문화가 건전하게 정착하고 지역의 발전과 주민의 행복이 증진될 수 있도록 범국민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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