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3특집]맛 향토음식의 산업화…①'포항물회'

입력 2009-07-07 06:00:00

뱃사람의 출출함 달래던 맛, 포항 속초 제주에서 출발하여 이젠 전국에 퍼

요리사가 포항물회 재료가 자연산임을 자랑하며 신선한 횟감을 들어보이고 있다.
요리사가 포항물회 재료가 자연산임을 자랑하며 신선한 횟감을 들어보이고 있다.
포항물회
포항물회

도다리와 가자미, 넙치(광어)가 날 선 칼날 앞에 퍼덕거린다. 요리사의 손은 냉정하다. 도다리와 가자미의 숨쉬기보다 사람의 입과 혀가 우선이다. 껍질은 벗겨지고, 떤 포는 채 썰어진다. 냉정한 칼질은 먹음직스러운 물회의 주재료를 장만한다.

"물회 재료로는 넙치와 가자미가 최고지요. 가자미는 이렇게 꼬리 부분이 노란 노랑가자미가 제일 맛있어요."

횟감 손질에 바쁜 주방장 유상철(44)씨의 손놀림이 현란하다. 지느러미를 치고 껍질을 벗기고 등뼈를 발라내는 솜씨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 깨끗이 손질한 재료를 주방보조 박대성(39)씨에게 건네자, 가는 칼을 이용해 국수 가락처럼 잘게 채로 썰어낸다. "여기서 쓰는 재료는 모두 '낚시바리'"라며 자연산임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려는 듯 낚싯줄에 매달린 가자미를 수조에서 들어내 보여준다.

씻고 물기를 없앤 물회의 주재료에 신선한 야채와 양념이 보태진다. 배, 오이, 양파, 실파에다 다진 청양고추와 마늘, 김이 곁들여진다. 참기름과 깨소금, 설탕이 고소한 맛과 단맛을, 전통 고추장은 곰삭은 맛을 풍긴다. 고추장은 매실, 엿기름, 찹쌀, 메주 가루 등을 섞어 1년 이상 숙성시킨 것이 제격이다. 그리고 물이나 얼음이 더해진다.

맛이 특이한데? 혀가 감긴다. 감칠맛이다. 씹히는 쫄깃함. 새콤하고, 달콤하다. 그리고 고소하다. 시원한 맛까지. 웬 맛이 이렇게 많아. 야! 별미다.

얼음 조각이 입 천장을 녹인다. 목 줄기 땀까지 씻어낸다. 전날의 숙취가 쓸려 내려가는 듯하다. 싱싱한 생선과 신선한 야채, 곰삭은 고추장이 버무려낸 맛이다. 물회.

뱃사람의 출출함을 달래던 맛이었다. 포항과 속초, 제주에서 출발해 이젠 전국으로 퍼졌다. 물회는 회다. 하지만 그 독특함 때문에 회가 아니라 '생선냉국' 또는 시원한 '술국'이라고도 한다. 물회는 '포항물회'가 대표적이다. 포항물회는 포항의 명품이자, 진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포항물회는 진화하고 있다. 날치알, 해삼, 전복 등 재료는 이제 한계를 벗어났다.

이경옥 포항농업기술센터 생활지도사는 "요즘은 독특한 물회 육수가 선보이고, 물회 도시락도 등장했다. 여름 무더위를 씻어내는 물회는 계절을 뛰어넘어 겨울에도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미미(味美:맛과 멋)야! 포항물회 먹으러 가자.

◆포항의 진품, 물회

생선회를 물에다 말아먹는 '물회'. 바닷가와 제주도, 울릉도 등 섬 지역에서 물회는 이제 보편적 음식으로 접할 수 있다.

그러나 포항물회는 다르다. 살이 부드럽고 비린내가 적은 싱싱한 생선이 주를 이룬다. 도다리, 한치, 오징어, 가자미, 넙치 등이다. 주로 흰 생선인 이 횟감은 살집이 부드럽고 도톰하며 비린내가 적어 포항물회의 주재료가 된다. 손에 들었을 때 칼처럼 빳빳이 서는 싱싱한 꽁치도 부드러움의 진면목을 보여주며 '살살 녹는' 포항물회의 대표주자 중 하나다.

생선뼈까지 썰어 된장을 풀거나 열무김치를 말아서 먹는 다른 지역의 물회와 달리 포항물회는 주로 생선 살점만 포를 뜨고 채치듯 썰어 큼직한 대접에 안친다. 시원하고 칼칼해서 '생선냉국'이라고 부르는 물회도 포항물회를 말한다.

◆전통 잇는 포항물회

새포항물회식당(포항시 북구 대신동)은 포항물회의 전통을 잘 잇는 식당 중 하나다. 23년 전통을 잇고 있는 새포항물회의 비결은 싱싱한 생선과 양념 고추장이다. 자연산 도다리를 비롯해 넙치, 우럭, 오징어 등을 주재료로 사용한다. 고추장은 직접 담근다.

2007년 5월 포항 흥해읍 영일만항에서 열린 '제12회 전국 바다의 날' 행사 때 이 식당의 포항물회가 참석자들에게 제공됐다. 포항시가 행사를 앞두고 시내 유명 물회식당의 고추장에 대한 맛 감별을 통해 이 집을 고른 것. 특제 물회도시락 3천개가 이날 행사에 사용됐고, 신선도와 맛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인 2007년 말 포항 유세 당시 참모 등 130명과 이 식당을 찾았고, 지난해 8월에는 물회도시락 12개가 청와대로 배달되기도 했다.

포항물회는 대신동 물회 네거리를 비롯해 죽도시장, 해안가길, 북부해수욕장, 환여동 및 두호동 회타운 등지에서 맛볼 수 있다.

◆진화하는 포항물회

포항물회는 재료, 조리, 먹는 법 등에서 날로 진화하고 있다. 도다리, 넙치, 우럭, 한치, 오징어를 넘어서 요즘은 놀래기, 쥐치, 꽁치, 멸치, 고동, 개불, 멍게, 해삼, 날치 알, 전복 등으로 점점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과메기로 대변되는 포항의 맛을 알리기 위해 꽁치만을 횟감으로 쓰거나 전복물회만을 고집하는 집도 생겨났다. 전복, 날치알, 성게, 해삼, 개불, 멍게 등을 버무린 웰빙 모듬물회도 나왔다.

독특한 물회 육수를 개발했는가 하면, 국수나 열무김치를 섞어 먹는 조리법은 기본이 되고 있다. 식중독 우려를 불식시키는 물회 도시락도 등장, 냉동포장 등을 통해 원거리 배달까지 가능해졌다. 포항물회의 '산업화'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포항시는 포항물회 홍보에 적극적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등 행사에서 '포항물회 시식회'를 갖기도 한다. '포항의 명물 물회 속에 빠져보~자. 새콤달콤 시원~ 물~회'를 가사로 한 포항물회 홍보가(제해철 작곡)도 지난해 첫선을 보였다.

◆다양하게 만들고 먹는 법

생선회, 야채, 고추장을 포함한 양념 등이 기본 재료이다. 통상 생선회 300g, 채 썬 배 200g, 오이 50g, 양파 300g, 실파와 청양고추 약간, 다진 마늘, 깨소금, 참기름, 양념 고추장, 얼음물 등이 필요하다. 밥은 가능하면 식혀서 섞거나 따로 먹는 것이 기본. 뜨거운 밥은 회를 익히기 때문에 제 맛을 내기 어렵다는 것. 얼음이나 물, 국수는 취향에 따라 곁들이면 된다. 횟감의 신선도를 우려하는 이들은 초장을 꼭 넣기도 한다.

불포화지방산(EPA, DHA)과 타우린 등 기능성 영양성분, 콜라겐 등 피부미용에 좋은 성분 등을 함유한 물회. 더위를 씻어내고 숙취에도 효과를 내는 물회가 각광받고 있다.

향토음식산업화 특별취재팀=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프리랜서 강병두 pl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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