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손에 쥔건 해고통지서"

입력 2009-07-03 09:34:59

비정규직 근로자 눈물의 사연

여야가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에 실패한 후 비정규직 해고가 줄을 잇고 있다. 대구경북에는 정규직으로의 전환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곳곳에서 서러운 눈물을 쏟고 있다.

#1.이창현(35)씨는 비정규직 고용기간(2년) 제한 규정이 발효된 1일, 하루종일 방안에서 바위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평소 비번 날이면 집 근처 사우나에서 여유롭게 보내왔지만 이날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혹여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을 해준다는 소식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휴대전화를 잠시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경북 경산시 진량공단 내 한 사출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에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막상 계약만료 통지서를 받고 나니 눈물이 났어요. 정치권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주길 간절히 기대했지만 허사더군요." 4년간 피땀 흘린 성과가 고작 실업자 통보서였다고 한숨을 쉬었다.

'비정규직'이란 타이틀이 늘 족쇄처럼 따라다녔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일자리를 잃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넉 달 전 태어난 아들을 위해 끊은 담배를 다시 꺼내 물었다. "지난해 미국 금융위기 한파로 10여 명의 정규직 사원들이 회사를 떠날 때만 해도 비정규직이란 명함은 오히려 축복처럼 느껴졌어요. 하지만 이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합니다."

하지만 그는 회사를 원망하지 않았다. 일하면서 능력도 인정받았고 그동안 즐겁게 일했던 일터였기 때문이다. 이씨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아내 역시 언제 실업 선고를 받을지 모르는 계약직 근로자여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아내는 내년 상반기에 계약 기간이 끝난다고 하는데, 희망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갈 곳이 없다는 게 더 문제"라고 고개를 숙였다.

#2.대구 성서공단의 한 제조업체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22개월째 근무하고 있는 김모(28·여)씨는 요즘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다. 두 달 후 근로계약 만료시일을 앞두고 회사 측으로부터 난감한 제안을 받았다.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대신 서울 협력 업체로 자리를 옮기라고 했어요. 그 업체에서 그만둔 한 정규직 여사원의 자리를 대신하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김씨는 서울로 직장을 옮긴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구에서만 살았고 곧 결혼도 앞두고 있는 처지다. 가족을 두고 고향땅을 등지라는 것은 회사를 떠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는 "열심히 일하다 보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라는 희망을 갖고 비정규직의 설움도 이겨냈었는데 정작 닥치니까 고민"이라고 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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