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와 함게 떠나는 세계여행] 동유럽 여행 숙소 잡기 노하우

입력 2009-07-02 13:36:26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나에 대한 실험'

늦은 오후 버스가 작은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마을이 통째 절벽에 매달려있는 불가리아의 옛 수도 '벨리코 투르노보'. 절벽 위에 삐딱빼딱 지어올려진 집들은 만화영화처럼 살아움직이는 것 같다. 아슬아슬 앉아있는 붉은색 지붕들이 귀엽고 정겹다. 매번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는 배낭을 온몸에 단단히 밀착시키고 심호흡을 가다듬은 다음에야 버스에서 내렸다. '올 것이 왔군!' 그랬다. 새로운 도시로 떠나는 몇 시간의 유쾌하고 설레는 버스여행 후에는 어김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숙제! '숙소 잡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버스터미널에는 투숙객을 잡으러 나온 민박집 주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진을 치고 있었다. 오늘은 이 작은 도시를 찾은 여행자가 나밖에 없나 보았다. 서너 명의 민박집 주인들이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들었으며 그들의 정신없이 시끄러운 언어포탄세례가 날아들었다. "호텔? 룸?" "10달러!" "12달러! 룸 굿! 로케이션 굿!" 당황은 금물이다. 나는 얼른 귀부터 틀어막는다.

여행은 '나에 대한 실험'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와 맞닥뜨리고 그 문제를 오로지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 안에 얼마나 엄청난 용기와 배짱과 침착함이 있는지 알게 된다. 석 달 넘게 홀로여행에 단련된 나는 더 이상 당황하지 않는다. 호객꾼들 틈에서는 일단 귀를 닫는다. 그리고 눈으로만 그들을 '휘-휘-' 둘러본다. 제일 수줍고 서툰 눈동자를 찾는다.(웬만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다) 발견 즉시 그를 따라간다.

거리가 버스터미널이나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고 방값이 아주 비싸지 않다면 그 민박집에 묵는다. 숙소를 고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고, 주인의 성품이 믿을만하다는 건 그 숙소가 안전함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믿을 만한 눈동자가 발견되지 않을 땐 하는 수 없다. 마음 단단히 먹고 부딪혀보는 수밖에. 일단 '나를 만만하게 보다간 큰코다칠 걸'이라는 뜻의 최대한 무서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침착하게 '로케이션(위치)'을 강조하는 사람을 찾는다. 원하는 방값을 부를 때까지 물러서지 않고 흥정한다. 이렇게 방값 흥정은 그 자리에서 해치우고 나중에 두 말 하지 않도록 단단히 확인해서 못박아둔다.(물론 이렇게 해도 나중에 딴소리 하는 주인들이 있다. 그럴 땐 세계대전도 불사할 듯 으르렁거리며 싸워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잊지 말 것, 따라가서 눈으로 직접 상태와 위치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방값을 지불하면 안 된다. 더욱이 뭔가 미심쩍은 민박집 주인을 만났을 땐 반드시 그날그날 하루치 방값만 계산해야 한다.

지금은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의 동유럽 나라들에도 호스텔, 게스트하우스 같은 전문숙박업소가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내가 처음 그 곳을 찾았던 5년 전에는 거의 50달러 이상의 고급호텔 아니면 10달러 미만의 민박집밖에 없었다. 나는 1달러에 벌벌 떠는 가난한 배낭족이었으므로 당연히 민박집만 찾아다녔고 그 와중에 온갖 산전수전공중전을 치러내야 했다.

민박집은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결코 얻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준다. 대문 너머로만 기웃거렸던 현지인의 가정집에서 잠을 자보고, 보통의 그 나라 사람들의 집안에는 어떤 가구와 가전제품들이 있는지, 무엇을 먹고 사는지, 가족들끼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사는지를 직접 겪어 알게 된다. 좋은 민박집 주인을 만나면 마치 친구가 생긴 것처럼 마음 든든하고 정겹다. 하지만 늘 이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민박집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낯선 나라의 낯선 공간에 내 온몸을(그리고 그 당시 내가 가진 전 재산을) 날로 던져 넣는 것이므로 늘 알 수 없는 온갖 위험에 노출된다. 여기까지 오면서 나는 이미 사기도 당할 만큼 당했고, 짐도 잃어봤고, 노골적인 추근덕거림도 당해봤다.

안타깝게도 벨리코 투르노보의 버스터미널에는 성품 좋아 보이는 민박집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하나 같이 '나 사기꾼'이라고 이마에 써 붙여놓은 능글맞은 표정의 아저씨들이었다. '나는 이미 베테랑 여행자라고!'라는 눈빛으로 나는 민박집 주인들을 쏘아보았다. 방값이든 뭐든 사기치려고 들 게 뻔해 보이는 곱슬머리의 느끼한 아저씨 한 명을 따라나섰다. 지나친 자신감, 혹은 모험심이냐고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여행은 '나에 대한 실험'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미래를 긍정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나 있는지, 그래서 나는 인생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대견스럽게도 여행을 통해 발견한 나는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다.

아주 지독하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운이 없으면 이런 사람도 만나겠지만) 사기 치는 민박집 주인도 귀엽다. 그들에게는 아마 이렇게 외국인 여행자들을 등치며 살아가는 게 소박한 일상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아저씨의 사기에 걸려드는 대신 사기치기에 골몰하는 아저씨의 덫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즐겨볼 심산이다. 무사안일한 매일이 좋다면 여행은 왜 나서는가. 벨리코 투르노보에서는 분명 흥미진진하고 유쾌한 여행이야기 하나가 더 생길 것이다.

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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