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인력 확충에 어려움 많아 오래된 책 폐기도 쉽지않아
"도서는 인류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사회적 수단이며, 도서관은 인류의 기억(도서)을 개인의 의식으로 전달하기 위한 사회적 기구다." 교육가이자 철학자인 피어스 버틀러(도서관학)가 남긴 이 말은 책과 도서관의 중요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책은 세대와 세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이기 때문에 책을 기증하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다. 학문 연구에 평생을 바친 스승이 학교를 떠나면서 제자들을 위해 책을 기증했다는 소식은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러나 최근 이런 훈훈한 이야기가 잘 전해지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장서는 많고 공간은 좁다
1960, 70년대 책이 없어 고생했던 것에 비해 요즘 도서환경은 매우 좋아졌다. 지역 대학도서관의 경우 장서 200만권 시대를 연지 오래됐다. 경북대 중앙도서관이 보유 중인 장서(비도서 포함)는 253만여권이다. 2000년 150만권을 돌파한 이후 2004년 전국에서 두 번째로 200만권을 넘어섰다. 매년 평균 8만~9만여권의 자료가 증가하고 있지만 공간(연면적 3만709㎡)이 한정돼 더 이상 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
연면적 1만9천962㎡의 영남대 중앙도서관에는 158만여권이 소장돼 있다. 영남대는 2004년 중앙도서관을 리모델링하면서 공간을 늘려 숨통을 틔워놓았지만 매년 4만6천여권의 장서가 늘고 있어 안심할 수 만은 없다.
계명대 동산도서관은 197만1천500여권을 갖고 있다. 1993년(연면적 2만1천613㎡) 개관 이래 장서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5천256㎡를 증축할 계획이다. 48만여권을 소장하고 있는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은 매년 2만5천여권의 자료가 늘어나고 있지만 지금 건물이 1985년에 지어져 공간이 협소한 상태다.
한국도서관협회가 발간한 '2008년 한국도서관 연감'을 보면 대구경북 대학도서관의 경우 타 지역 대학도서관에 비해 장서수는 많지만 공간은 협소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연감에 따르면 17개 대구 대학도서관의 평균 건물연면적은 2만983㎡로 광역시 가운데 부산(2만396㎡) 다음으로 적다. 광주(9만7천206㎡)'인천(3만9천773㎡)'대전(4만6천910㎡)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경북에 위치한 41개 대학도서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평균 건물연면적이 5천290㎡로 전국 도 가운데 경남(3천270㎡)에 이어 두 번째로 협소하며 제주도(2만9천995㎡)의 5분의 1 수준에도 못미친다.
반면 장서수는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대구 대학도서관이 소장한 장서(비도서류 제외)는 494만5천507권으로 한 곳당 평균 29만912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부산(21만4천389권)'인천(18만7천273권)'광주(21만1천535권)'대전(23만9천521권)'울산(20만9천503권)에 비해 월등히 많으며 서울(29만2천831권)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은 수치다.
경북의 대학교도 총 859만653권, 한 곳당 평균 20만9천528권의 도서를 보유해 강원(16만5천877권)'전북(19만3천447권)'전남(10만4천57권)'경남(11만8천167권)'제주(16만425권)보다 많다.
◆기증이 반갑지만은 않다
정확히 표현하면 도서관에 책이 넘쳐나는 것이 아니라 수용능력이 한계 상황에 이르고 있다. 아직도 국내 대학 도서관의 장서는 외국 유명대학 도서관에 비해 많이 적은 편이어서 지속적으로 장서를 늘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미국 하버드대는 1천500만권 이상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와 시설면에서 국내 대학도서관은 선진 외국 대학도서관을 따라가지 못한다. 외국 유명 대학도서관의 경우 소장 도서뿐 아니라 건축적 조형미도 뛰어나 관광지로도 각광 받고 있다. 도서관 관광을 상상도 못하는 국내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부러울 따름이다.
대학도서관 관계자는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으며 매일 엄청난 양의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장서를 늘리고 공간을 확충하고 싶어도 여건상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책을 기증하려는 사람이 있어도 도서관측에서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책 둘 곳이 부족할 뿐 아니라 책이 늘어날 수록 인력 확충도 이뤄져야 하지만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을 폐기하는 방법으로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학평가 항목에 장서수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책 폐기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기증을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 궁여지책으로 기증 받은 책을 선별해 일부만 소장하고 나머지는 중소 도서관 등에 재기증하는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또 다른 대학도서관 관계자는 "공간 문제뿐 아니라 기증하는 책 중에는 도서관에서 이미 소장하고 있는 것이 많아 선별 기증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도서관 예산이 타예산에 비해 우선 순위가 떨어져 예산을 늘리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책 처리 "고민되네"
예전보다 기증이 쉽지 않은 요즘 정년 퇴임을 앞둔 교수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가 책 정리다. 연구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을 집에 다 가져갈 수도 없고 다른 교수에게 주고 싶어도 역시 연구실 공간이 한정돼 있어 무리다. 일반도서관에 기증하고 싶어도 전공관련 서적이 대부분이어서 도서관 성격과 맞지 않는다. 외국의 경우 헌책방 운영자를 불러 입찰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헌책방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어 이 마저도 길이 막혀 있다.
이에 따라 제자들에게 책을 나눠준 뒤 나머지는 폐기 처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예 북 카페를 차린 교수도 있다. 2월 계명대 교육학과를 정년 퇴직한 신득렬(65) 교수는 팔공산 파계사 초입에 북카페 '파이데이아'를 열었다. 북카페에 있는 책은 모두 신 교수의 연구실에 있던 것들이다. 신 교수는 "교수마다 평균 3천~5천권 정도의 책을 갖고 있는데 사장시키기에는 아깝다. 한국 도서관 시스템이 중앙도서관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수용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 단과대학별로 도서관을 활성화시켜 퇴임 교수들의 책을 기증 받는 등의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책 기증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옷장을 정리하듯 2, 3년에 한번씩 책장을 정리해 기간이 오래 지나지 않은 책을 기증해야 기증받는 쪽과 기증하는 쪽 모두 시너지 효과를 창출 할 수 있다는 것. 도서관 관계자들은 오래된 책은 대부분 사용가치가 적어 기증받는 쪽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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