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위기 지역 건설업 '발동동'
1990년대 아파트를 앞세워 전국구 기업으로 성장했던 대구 건설사들이 IMF의 모진 위기를 견디며 회생을 길을 찾아 나섰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와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10년 만에 또다시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역 건설업계에서는 "IMF때와 달리 국내 경제 환경이 바뀌었고 지역 건설업 역량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만큼 이번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향후 대구 건설업의 부활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제2의 IMF로 접어든 대구 건설업
IMF로 줄줄이 쓰러졌던 대구 건설사들은 2005년을 전후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우방을 시작으로 청구와 영남건설이 법정관리를 졸업하며 M&A를 통해 새 주인을 찾아 경영정상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또 비교적 IMF 고비를 잘 넘겼던 화성산업과 서한, SD건설(구 대백건설)을 비롯해 2000년 이후 주택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태왕 등이 꾸준한 활동을 펴며 지역 건설업은 예전의 위상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몇 년이 지난 지금, 대구 건설업의 시계는 10년 전 IMF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다.
회사 정상화 이후 전국 도급순위 62위까지 올랐던 C&우방에 이어 태왕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을 비롯해 청구와 영남은 주인이 또다시 바뀌며 본사를 서울로 옮긴 뒤 실적이 거의 없는 회사로 전락했다.
IMF를 전후해 대구 5대 건설사였던 청구(전국 21위), 우방(전국 32위), 보성(전국 43위), 화성(전국 72위), 서한(전국 100위) 중 청구와 우방은 법정관리를, 보성은 회사가 청산된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셈이다.
10년 전 대구 건설사들이 '금융위기'란 외부적 상황에서 위기를 맞이한 반면 현재의 위기는 '건설업 내부'에 원인이 있다. 1990년대 지역 건설사들은 지역 시장을 기반으로 전국으로 뻗어가며 착실한 성장을 했지만 2000년 이후 대구 건설사들은 안방에서조차 '역외 대형' 건설사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여온 것.
IMF 이후 '아파트 특수' 바람이 불면서 대기업들이 주택업에 잇따라 뛰어들고 정부의 수도권 규제책으로 지방으로 내려와 시장 쟁탈전을 벌이면서 주택 과잉공급 상황이 발생했고 결국 주택 시장 침체란 '유탄'이 상대적으로 규모와 자금력이 약한 지역 건설사에 고스란히 날아온 탓이다.
지난 6월 법정관리에 잇따라 들어간 우방과 태왕 모두 회사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주택 시장 침체'다.
지역 건설사들은 "2005년을 전후해 역외 대형 건설사들이 대구로 몰려들며 경쟁적으로 아파트 사업을 시작했고 이로 인해 땅값이 오르고 분양가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고분양가에 공급 과잉이란 주택 시장 왜곡 현상이 나타나면서 신규 분양에 나섰던 대구 건설사들이 결국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관급 공사 역시 역외 업체들의 '독무대'가 됐다.
대구에서 발주되는 관급 공사 중 지역 업체들의 수주 비율은 고작 20~30% 안팎 정도에 그치고 있다. 대형 관급 공사의 경우 설계에서 시공까지 일괄 입찰방식으로 진행되는 턴키 발주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상대적으로 자금력이나 기술력이 떨어지는 지역 업체들의 설자리가 줄어든 탓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구에서 발주된 공사는 관급과 민간을 포함해 1천869건에 4조176억원으로 이 중 지역업체는 1천89건을 수주해 건수로는 58%의 점유율을 보였지만 수주금액은 1조1천439억원에 그쳤다. 돈 되는 대형 공사는 고스란히 역외업체 몫으로 돌아간 셈이다.
◆대구 건설업이 살려면
위기에 빠진 대구 건설업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침체된 주택 시장이 되살아나는 데 최소 2,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고 정부가 발주하는 대형 공사들은 대형 역외업체들의 '잔치'가 되고 있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
건설사 관계자들은 "전국 100위권 업체가 되려면 기술 인력뿐 아니라 자금력이 뒷받침돼 상당한 실적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기존 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건설시장에서 수주 물량이 적은 지방을 기반으로 한 대형 건설사가 만들어지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발 소외지역이던 대구는 20여년 만에 '관급 공사 특수'란 호재가 찾아왔다.
이미 1차 사업이 발주에 들어간 낙동강 정비 사업(9조7천억원)과 대구도시철도 3호선(7천억)을 비롯해 대구 및 경북 국가 산업단지 조성사업과 2011년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 부대 시설 및 수성의료지구 공사 등 대형 공사 발주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대구 건설사들은 "올해부터 2, 3년간 대구경북에서 발주되는 국책 건설사업 예산이 20조~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역 건설업계로서는 IMF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기회"라고 밝혔다.
실제 2000년 초반 서해안 발전을 내세우며 '국책 개발' 붐이 불었던 광주·전남의 사례를 본다면 대구 건설업도 충분히 재활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IMF 이전 전국 도급순위 100위 내 업체가 두곳에 불과했던 광주·전남 지역 건설사는 대규모 개발 사업을 발판으로 삼아 2007년 기준으로 100위 내 업체가 7곳, 200위내 업체는 24곳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따라서 정부 및 대구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건설업계의 협력을 통해 정책적으로 지역 업체 수주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대구시회 관계자는 "낙동강 사업의 경우 지역 업체 의무 공사 비율이 턴키는 20%, 일반 공사는 40%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국책 사업 예산을 대폭 지자체로 위임하고 지역의무 하도급 비율을 높인다면 몇 년 뒤 대구 건설업의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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