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문의 펀펀야구] 프로야구 감독의 감정 기복

입력 2009-07-02 08:55:33

오로지 작품에만 매달리는 예술가, 마감시간을 앞두고 연신 담배를 피워가며 기사 작성에 열중하는 기자나 장시간 수술에 매달려 거의 탈진하는 의사들은 통계적으로 다른 직업에 비해 수명이 길지 않다. 순간과 순간을 넘어서며 장시간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이러한 직업들은 결국 습관적인 일이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수명을 재촉하는 것이다.

대비하지 않는다면 야구 감독의 수명도 이러한 직종의 범주에 있다. 사실 프로야구 감독은 경기 전 별로 하는 일이 없다. 특별히 결재할 서류도, 둘러봐야 할 현장도 없다. 트레이너로부터 부상 선수에 대한 보고를 받고 20분 정도 갖는 코칭스태프 회의가 전부. 그날 경기의 라인업(오더)도 대부분 여기서 결정된다. 미팅이 끝나면 대개 독서를 하던가 휴식을 취한다.

본격적인 타격 연습이 시작되면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의 연습을 지켜보며 컨디션을 점검하거나 기자들과 담소를 나눈다. 그리고 연습이 끝나면 간단히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다. 여기까지는 가장 할일이 없어 보이는 직책이기도 하고 대체로 평온한 편이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면서 사정은 돌변한다. 저절로 신경이 곤두선다.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여유를 보이지만 눈에 비쳐지는 플레이가 전부가 아니다. 머릿속은 순간순간 온통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흐름을 가늠하고 집약된 정보에서 선택한 결과에 따라 감정은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솔직한 성격에 경력이 짧은 김시진 히어로즈 감독은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얼굴색이 변하지만 베테랑인 김성근 SK 와이번스 감독은 앉은 채로 표정의 변화가 없다. 경기가 안풀리면 상기된 채로 잔뜩 부어 있는 선동열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나 갈수록 붉게 상기되는 김인식 한화 이글스 감독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지만 감정은 제대로 숨겨지지 않는다.

초조한 모습으로 시험 문제를 골똘히 바라보는 듯한 조범현 KIA 타이거즈 감독이나 팔짱을 끼고 이따금 고개를 가로젓는 김재박 LG 트윈스 감독, 줄곧 서서 박수로 격려하는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은 모두 선글라스 속으로 애타는 표정을 숨긴다. 반대로 찬스에서 삼진을 당해도 큰 박수를 쳐주는 제리 로이스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다분히 미국적이다. 야구는 야구일 뿐 스트레스를 줄이고 선수들을 격려해 다음의 기회를 기약하는 것이다.

생각을 집중하고 흥분이 함께 한 3~4시간이 지나면 정신이 멍해진다. 승패에 따른 감정의 기복도 크다. 승리의 성취감은 여러가지로 긍정적인 위안이 되지만 패배 후의 착잡한 마음은 머리를 무겁게 만들고 아쉬움이 쉬 가시질 않는다. 연패에 빠지면 스트레스가 통째로 날아든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다. 주요 선수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근심은 더 깊어진다.

이래저래 노심초사하는 것이 감독의 처지인 것이다. 억대의 연봉을 받아도 건강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선동열 감독이 금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몸무게를 10kg 가까이 줄이고, 술을 끊고 매일 오전 걷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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