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비정규직 대란 우려 현실로

입력 2009-07-01 10:46:16

그토록 우려했던 비정규직 사용기간(2년) 제한 적용시점(7월 1일)을 결국 넘기고 말았다. 여야는 30일 막판까지 협상을 벌였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안정된 직장에서 높은 보수 받으며 일 안 해도 되는 국회의원들이야 당리당략에 따라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고 그러다가 폭탄주 몇 잔 마시면서 기분 풀고 악수할 수는 있지만 조마조마하며 살아가는 비정규직들은 이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에 돌입했다. 벌써 잘리는 사람들도 생겨나는 중이다.

현행 비정규직법은 2년을 경과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든지 아니면 계약을 만료하든지 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이 법 시행으로 고통받는 것은 열악한 환경에 놓인 중소업체 종사자들이다.

비정규직법이 개정되지 않아도 대기업들은 큰 영향이 없다. 대구 최대 사업장인 대구은행만 하더라도 이런 일에 대비해 비정규직원 650명을 정규직으로 바꾸고 나머지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대형유통'소매점들 역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본격적인 처우개선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영세기업이나 병원 등의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이들에게는 이제 해고라는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90% 이상이 종업원 수 300명 이하의 중소기업에 몰려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소기업 비정규직들의 대량 해고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대구경영자총협회는 매월 3만∼5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근속기간 2년 만료 비정규직들의 실직 가능성이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보다는 해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이달부터 1년 동안 차례로 정규직이 되거나 일자리를 잃는 갈림길에 설 비정규직 근로자가 70만∼100만명에 이른다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 노동계 역시 비정규직법 개정을 두고 절충될 수 없는 견해차를 보이지만 특정 규모의 고용불안이 초래될 것이라는 점은 공통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게 더 나쁘다. 대규모 고용불안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해관계나 명분에만 얽매여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허송세월만 한 것이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재계약하지 않는 기간제 근로자가 그대로 교체 사용되기 때문에 실업 규모가 커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머물고 싶은 직장을 법 때문에 떠나야 하는 비정규직의 처지와, 5월 현재 실업자가 94만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새 일자리를 찾는 동안의 고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재계약되지 않는 근로자가 외주화되거나 자주 일자리를 옮겨다니면서 처우와 삶의 질이 더 열악해지는 것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숙련된 인력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비정규직법 때문에 내보는 것은 기업에도 손해이지만 그렇다고 기업에 정규직 전환을 강요할 수는 없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면 4대보험 및 퇴직금 충당 등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이를 감당할 업주는 거의 없다. 종사자들도 급여가 대폭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4대보험 등 본인 부담금을 충당하는 것은 소득의 실질적인 감소를 가져온다며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제 결론은 명확해졌다. 여야는 비정규직법 시한을 하루라도 빨리 연장한 뒤 전면 손질에 들어가야 한다. 시한을 얼마로 연장하든지 일단 대량 해고 사태부터 막은 뒤 어떤 것이 고용을 더 보장할 수 있는지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순서다. 합의하지 못하면 국회의원들은 세비를 몽땅 반납하는 것이 맞다. 국회 문조차 열지 못하면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 그 돈을 비정규직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일에 투자하라.

여기에 노동계도 힘을 보태야 한다. 사실 양대노총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만 외칠 뿐 고용유지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지금은 청년실업자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다. 이들을 흡수하려면 양대노총의 주력 조합원 소속회사들이 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이는 결국 대기업, 공공기관, 금융권이 고용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려면 중소'영세 사업장보다 훨씬 안정되고 월등히 많은 그들의 임금을 줄여 고용을 늘리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내 것을 양보하지 않고 어떻게 남의 양보만 받아내려 하는가.

최정암(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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