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십만 비정규직 갖고 정치놀음 할 땐가

입력 2009-06-30 10:48:32

수십만 비정규직들의 애간장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있다. 오늘 자정까지 비정규직법 시행을 유예하는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아들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이렇게 비정규직을 고용 시한 2년 종료 마지막 날까지 내몰면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무책임한 정치놀음은 서민의 목숨을 벼랑 끝에 매다는 잔인한 짓이다.

여야 합의로 2년 전 비정규직의 고용과 임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인 만큼 일단 시행에 들어가자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있는 224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 30% 기업은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이 법이 정규직 확대에 나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55% 기업은 절반 이상 해고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 숫자가 얼마이든 간에 무더기 해고사태가 분명한 게 현실인 것이다.

야당이나 노동계가 대량 해고를 감수하고라도 이 법의 시행을 밀어붙이자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정규직 고용 조건이라도 계속 일자리를 갖고 싶어하는 게 현장에서 확인하는 생각들이다. 전국경제인연합 조사에 따르면 그러한 비정규직이 80%에 이르고 있다. 이 법의 취지는 이상적이라 하더라도 현실은 딴 방향인 것이다. 누가 해고당한 수많은 비정규직의 뒤를 책임질 것인가. 좋은 정치는 현실의 충실한 수렴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여야 간에 이 법의 유예를 두고 대화가 오가고 있다는 점이다. 무조건 시행을 주장하던 민주당이 태도를 바꿔 최대 6개월 유예 안을 제시했고 한나라당은 300인 미만 사업장만 규모에 따라 1, 2년 유예하자고 물러섰다. 정규직도 내보내는 지금 같은 경제위기에서는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게 다수의 여론이다. 정치권은 이 점을 직시해야 한다. 만일 오늘 안에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국회만 쳐다보던 비정규직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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