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냐 자연계냐 진로 선택 앞둔 '고1'

입력 2009-06-30 07:00:00

대구 계성고 1학년생이 25일 교사와 계열 선택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계성고 1학년생이 25일 교사와 계열 선택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했다. 예전 한 전자제품 광고로 쓰인 이 문구는 비단 가전제품 선택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서 다양한 선택도 그것의 결과에 따라 한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 이맘때 일반계 고교 1학년들의 처지가 딱 그렇다. '자연계로 갈 것이냐, 인문계로 갈 것이냐'는 선택의 기로에 서기 때문. 앞으로의 인생 설계에 있어서 중요한 갈림길에 들어서는 만큼 많은 것을 고려하고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한다. 저마다 선택을 하고 나서 만족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의외로 잘못된 선택임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다. 중요성에 비해 선택하기까지 들이는 노력과 정성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한 선택에 '방향 전환'

김모(18)군은 고1 때 자연계를 선택했다. 수학은 성적이 괜찮게 나와 자신이 있었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은 점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오판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자연계열 수학 공부는 김군이 생각했던 것보다 버거웠다. 수업시간마다 진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보니 성적도 악화 일로였다. 김군은 결국 자신이 자연계 체질이 아님을 깨닫고 고3 때 어렵사리 인문계로 계열을 바꿨다.

고1 학생들은 보통 입학하고 나서 4월까지는 진로적성검사를 받는다. 5월 말이나 6월 초에 그 결과가 나오면 학생과 부모에게 그 결과를 알리고 계열 선택 설문지를 준다. 그리고 2학년 교과서 신청 등 학사일정이 진행되는 9월쯤까지 2, 3회 정도 계열을 바꿀 수 있는 기회도 준다. 그러나 대부분 학사 일정이나 교과서 주문, 반편성 등의 이유로 1학기 때 계열 선택 과정을 끝내는 편.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 입장에선 계열 선택을 할 수 있는 기간이 촉박하다. 충분한 상담을 한 뒤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학생들은 이런 상황에서 주로 특정 과목의 성적을 기준으로 계열 선택을 하고 있다. '수학을 잘하면 자연계, 영어를 잘하면 인문계'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단순한 도식이다. 의대에 진학한 이모(19)군도 수학·과학 성적이 좋다는 것만 믿고 자연계를 선택했다. 부모님도 의대 진학을 바랐기 때문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의대 수업을 듣다 보니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었다. 이군은 결국 '기자를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인문·사회계열 전공으로 전과를 알아보고 있다. 이군은 "평소 관심대로 진로를 결정했다면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범성학원 차상로 평가실장은 "수학이 약하다는 이유로 인문계를 지원했다 막상 대학에는 이공계로 진학하는 학생들을 많이 봤다"고 전했다. 차 실장은 이에 대해 "수능 표준점수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수학이 계열 선택에 가장 큰 기준으로 쓰이고 있다. 학생 개인의 흥미나 적성 등은 무시되는 형편"이라고 분석했다.

◆첫단추 잘못 끼우면 가시밭길

물론 계열 선택의 잘못을 되돌릴 기회는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불편함은 만만치 않다.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공부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면서 성적이 하락한다는 점이다. 고2 때부터 계열마다 수업의 비중은 크게 달라진다. 자연계열은 수학과 과학 수업을 많이 이수해야 한다. 인문계열은 영어와 사회 수업이 많다. 이에 적응을 못하면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기 쉽고, 이는 성적 하락으로 이어진다. 송원학원 윤일현 진학지도실장은 "본인이 선택한 계열의 공부가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다면 일단 학교 측에 계열을 옮겨도 되는지 그 타당성을 상담하는 것이 먼저"라고 조언했다.

대학에 진학할 때 교차지원(인문계 수능을 쳤지만 자연계로 진학하거나 그 반대로 하는 경우)을 할 경우에도 불이익이 생긴다. 현행 7차 교육과정상으로는 인문·자연계 구분이 없어지고 수능시험 과목도 학생 자율로 선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학생 본인에게 유리한 과목을 선택해 더 좋은 성적을 받은 뒤 교차지원을 하는 학생도 많다. 그러나 이런 경우 원하는 대학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 상위권 대학의 경우 대부분 교차지원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 교차지원을 허용하는 대학들도 동일계열 지원 학생들에게 5~10%씩 가산점을 주고 있다. 그만큼 교차지원 학생들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차상로 평가실장은 "인문계열 학생들은 수학이 쉬운 편이라 수능성적도 이공계 학생들보다 더 좋은 것이 보통으로, 점수를 손해보더라도 이공계에 지원해 합격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교 과정에서 이공계 공부에 필수적인 미·적분 등의 수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대학에서는 이런 학생들의 수학 기초실력 향상을 위해 따로 수업을 편성하는 등 여러 가지로 불편함 점이 많다.

교차지원을 생각하는 학생들의 경우 내신성적 관리도 힘들어진다. 자신의 계열 공부 이 외에 지원하고자 하는 계열을 위한 시험 준비도 따로 해야 하는 만큼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 윤일현 실장은 "한국의 교육 특성상 정상적으로 수험준비를 해도 어려운 상황에서 교차지원을 준비하게 되면 학교생활 자체가 굉장히 고단하고 견디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전문가들은 부모가 일찌감치 자녀의 특성이나 흥미, 취미 등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주문한다. 학생도 자신의 진로에 대해 평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진 학생이 시행착오를 적게 겪는다"는 말은 바로 이를 뜻한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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