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스포츠가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것은 점과 선이 어우러지는 이 복잡 미묘한 공놀이 '야구'이다. 선 위의 공이 또 다른 선 위의 배트와 만나, 점에서 타격이 이루어지고 그 공은 또 다른 선 위에서 다음 점을 향해 날아간다. 시간 또한 그러한 것이 스리 아웃이라는 점과 선을 양팀이 9번씩 되풀이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동양의 심오한 철학과도 오버랩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억지일까.
해마다 4월이 되면, 겨울 방학을 마치고 다시 새 학기를 시작하는 초등학생과 같이,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이 생긴다. 우승팀을 점치고, 나름의 전력 분석을 하고, 술자리에서는 내 지역 팀 타박과 자랑에 열을 올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 시즌이 시작됐고, 유난히 뜨거운 대구의 여름과 함께 내 눈물을 두 번이나 먹은 프로야구도 후반기로 넘어 갈 것이다.
나의 첫 번째 눈물은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동시에 시작된 어린이 회원모집 때였다. 당시 대보백화점 2층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줄을 서다 보니 삼성 라이온즈가 아닌 삼미 슈퍼스타즈 회원이 돼버렸다. 당시에는 하도 정신이 없어서, 다음날에 사태 파악을 하고 오전 내내 울었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는 1984년 여름에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서 겨우 갔던 야구장에서(누가 친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 바로 내 앞에 떨어진 홈런 공을 아주 무섭게 생긴 아저씨가 낚아채 가버린 것이다. 너무나 억울해서 눈물이 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알라' 공 뺐어간 그 양반도 참….
그 때의 야구 소년이 이제는 아빠가 됐고, 내 아이와 다시 야구장을 찾는다. 내 아이도 나와 같은 눈물을 흘리게 될까?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선수들의 부상 없는 선전을 기대한다.
김영신(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
사촌 오빠들과 고교 야구를 응원하며 야구의 룰을 배웠고 그 당시 경북고와 대구상고, 대구고는 고교야구대회를 늘 휩쓸며 9회말 2사후의 역전승을 선사하기도 해 야구 응원의 참맛이 무엇인지 알게 해줬다. 우승을 하고 돌아 온 야구 선수들은 카 퍼레이드를 잊지 않았고 혹시 류중일 선수를 볼 수 있을까 싶어 일정을 점검하기도 했었다.
1982년 처음 프로야구가 생길 때의 열기는 대단했다. 프로야구가 지역 연고로 시작되었고 아버지는 초등학생 막내 동생을 어린이 야구단에 가입시켜 주면서 삼성 라이온스가 아닌 MBC 청룡에 가입시키셨는데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아버지는 하나뿐인 남동생에게 운동의 묘미를 알려주려고 했었는데 삼성은 가입 시기를 놓쳐 MBC에 가입시킨 것이다. 하지만 야구 중계가 열릴 때마다 나는 어린 동생을 구박하며 응원전에 열을 올렸다. 무조건 삼성이 이기를 바라는 나와 동생은 자기는 MBC 어린이 야구단이라며 MBC가 이기기를 응원했었다. 동생은 푸른색의 청룡 유니폼 점퍼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고 난 그것이 보기 싫어 아버지에게 내년엔 꼭 삼성어린이야구단에 가입해 주라고 부탁했다. 다음해 아버지는 삼성 어린이 야구단에 동생을 가입시켜 주셨고 동생과 응원하는 팀이 같아지자 응원하는 재미가 더해졌다.
지금은 야구를 챙겨보지는 못하지만 스포츠 소식을 통해 삼성이 패했다고 하면 왠지 안타깝다. 이 더위에 성적까지 하위권에서 머물고 있는 삼성 선수들이 힘을 내서 '최강 삼성'을 회복하기를 바라며 오늘도 신문의 스포츠 면을 유심히 살핀다.
김선경(대구 서구 평리2동)
♥
누군가 야구를 투수 놀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홈런을 치든 삼진을 잡든, 투수가 투구를 해야 경기가 이루어지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이다. 그러다 보니 야구 경기에서는 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 한 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한 해 30승을 올렸던 너구리 장명부, 베어스의 영원한 레전드 불사조 박철순, 국보급 투수이자 통산 평균자책점 1.20의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올린 최동원, 그리고 100승 200세이브라는 기록의 보유자 김용수.
그 이름과 기록만 보더라도 모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투수가 떠오른다. 박충식! 위의 선수들처럼 화려한 조명을 받은 선수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한 경기가 있다. 바로 그 경기!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3년 가을. 삼성과 해태(현 기아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3차전.
1승1패에서 삼성의 박충식과 해태의 문희수가 대구에서 만났다. 고등학교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난 이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봤다. 당시 삼성은 홈런왕 김성래와 신인왕 양준혁의 타격이 좋았고 해태는 조계현, 이강철 등의 선발진과 평균자책점 0.78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의 완벽 마무리 투수 선동열이 버티고 있었다.
6시. 가을 잔치의 3차전이 시작되었다. 2회말 삼성이 적시타로 선취점을 올리자 해태도 이에 뒤질세라 3회초 곧바로 야구 천재 이종범의 땅볼로 동점을 만든다. 그리고 3회말. 삼성이 2사 1, 2루의 찬스를 잡자 해태 김응용 감독은 초강수를 둔다. 선동열의 투입이 그것이다.
TV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선동열이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이야. 팽팽한 투수전으로 이어지다가 6회에 또다시 1점씩 뽑아 스코어는 2대2. 9회까지 양 팀은 상대 투수의 구위에 눌려 더 이상 점수를 뽑지 못하고 연장전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10회가 끝나고 선동열도 물러나고 마운드를 송유석에게 넘긴다. 그때 얼마나 기쁘던지…. '이제는 이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동열이 내려간 이상 삼성의 방망이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연장전 15회 2대2 무승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다. 한 방만 날려주었더라면….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연장까지 오지 않고 9회에 승부가 났다면 지금 내가 박충식이라는 선수를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호리호리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공에 얼마나 많은 해태 타자들이 허공에 방망이를 휘둘렀던가. 한국시리즈의 갈림길이었던 3차전에서 신인으로 선동열을 상대로 한 그의 피칭은 많은 야구팬들에게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피칭 한 경기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 경기를 꼽을 것이다. 박충식. 4시간30분 연장전 15회. 그리고 181구!
배문종(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
내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프로야구 무료 입장을 할 수 있도록 대구백화점에서 배려해 주었기에 야구장을 가본 적이 없는 아들의 현장 체험을 해 대구시민야구장을 찾았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으나 야구장 주위는 인산인해였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긴사람 꼬리는 따가운 햇볕도 해체하지 못했다. 우리도 끄트머리 줄을 찾아 서 있는 동안 먹을거리가 푸짐했지만 명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서너 시간 흘렀을까, 매표소 앞문이 열리면서 길다란 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응원석 쪽으로 가려는데 벌써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서 응원을 해야 했다. 동작이 빠른 아들은 언제 프로야구 선수들을 발견했는지 그냥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양준혁 선수로부터 손바닥에 사인을 받아왔다. 운동장 안은 각양각색의 응원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왔고 덩달아 신이 났다. 우리도 막대 풍선을 들고 두들겨 대면서 야구 현장체험을 잘하고 있는데 아들 아이는 집에 가자고 했다. 사인 받은 손바닥에 땀이 나서 사인이 지워질 것 같다면서 보채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통닭으로 달래고 아이스크림으로 또 달래고 해도 막무가내이던 아들 앞에 파울 공이 날아왔다. 순식간에 공을 줍기 위해 주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공을 주운 한 할아버지는 행운을 거머쥔 것처럼 환하게 웃으시면서 "내가 대구에서 야구할 때마다 야구장을 찾아도 야구공 줍기는 처음이다."라며 너무 좋아하셨다. 파울 야구공에 정신이 팔려 사인이 지워지는 것도 잊었던 아들이 다시 보채기 시작했고 주위 눈총과 방해가 될 것 같아 8회말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내일까지 손을 씻지 않아도 혼내지 말라고 말했다. 사인이 지워질까 장갑을 끼고 잠이 들었고 깨워도 일어나지 못하던 아이는 스스로 일어나 책가방을 챙겼고 심지어 이부자리까지 정리정돈해놓은 뒤 신바람을 내며 학교에 갔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인기가 최고였다면서 또 야구장에 가면 멋진 메모지를 가져가겠다고 챙겨두었다. 그 후로 서로 시간이 안 맞아 야구장을 찾지 못했고 요즘도 집에서 야구를 볼 때면 사인받은 이야기를 하며 웃곤 한다.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원고 분량은 제한 없습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체육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이영부(대구 수성구 시지동)
다음 주 글감은 '다자녀'입니다.
많은 사연 부탁 드립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