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만해도 250만명을 훌쩍 넘겼던 이웃들이 하나 둘 대구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떻게 250만명이라는 인구를 지켜야 할지 고심하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상황이 이쯤 되었으면, 대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 누구에게 돌을 던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구의 지역총생산(GRDP)은 2007년 기준 29조5천284억 원으로 1인당 1천190만원을 약간 웃돈다. 전국 평균에 훨씬 못미칠 뿐만 아니라, 16개 시'도 중에서도 꼴찌행진을 16년째 계속하고 있다.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도 예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해 천수답에 물붓기식이었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지역개발 프로그램 역시 겉돌았다. 밀라노 프로젝트나 DGIST 학부운영 프로그램을 야심 차게 추진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고 여전히 회의적이다.
대구를 바라보는 외부의 눈길 또한 따뜻하지 못한 것 같다. 이른바 'TK정서'의 진원지로, 보수·골통도시로 몰아부치려는 분위기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포항이나 구미, 울산, 창원을 오갈 때 잠시 거쳐 가는 나그네 도시로 치부되는 게 대구의 모습이다. 지구 온난화로 사과 재배지역이 북상하면서 야속하게 사과의 고장이라는 브랜드마저 잃어버렸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대구의 위상을 하루빨리 복원시켜야 한다. 계속된 침체와 쇠락으로 인해 대구는 이제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의 시험무대가 돼버렸다. TK정서에 함몰된 '어제의 도시'가 아닌 새로운 기적을 갈망하는 '미래의 도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구는 지금을 전략적 전환기(터닝포인트)로 삼을 필요가 있다.
첫 번째 과제는 대구의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는 특유의 '대구 브랜드'를 발굴하는 것이다. 보수·폐쇄적 도시에서 글로벌 경쟁력 있는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무늬만을 그려 넣을 것이 아니라 밑그림 자체를 새로 그려야 한다. 전통 산업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떨쳐 버려야 한다. 섬유산업이나 패션쇼 정도로 대구를 세계도시로 발돋움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시대적 패러다임을 제대로 읽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대구 변신의 키워드는 R&D(연구개발)와 의료산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 문화'예술 등 정주환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적 R&D 도시로 변모할 수 있도록 대구의 모든 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모아주어 첨단R&D 연구소를 흡입해야 한다.
또 이번에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에 기필코 성공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대구를 'WHO 건강도시'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건강도시의 비전은 변화의 발상전환과 함께 대구 시민의 피와 땀을 필요로 한다. R&D와 의료산업이 어우러질 때, 대구는 글로벌 환경친화건강도시로 세계 속에 우뚝 솟을 것이다.
그런데 대구의 이 같은 도약은 제도적 장치나 법제도만으로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글로벌 도시는 그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특유의 정신이 꿈틀거린다. 뉴욕에는 뉴욕 특유의 분위기가 있고 파리는 파리다운 기운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관용의 도시' 대구를 꿈꿔본다. 지금 대구가 세계화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관용의 정신'인 때문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 수 있도록 문화적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외국인을 포함한 외지인도 대구의 갖가지 기관이나 단체의 대표가 될 수 있도록 열린 마음을 갖춰야 한다. 영남의 인재를 떠나보내는 도시에서, 세계인재가 다시 모이는 도시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물리적 에너지뿐만 아니라 정신적 에너지까지 재생성하여 서울과 지방, 영남과 호남, 도시와 농촌의 갈등을 승화시키는 역할모델(role model)로 대구는 변신해 나갈 것이다.
대구는 단연코 희망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컬러풀 도시, 섬유도시, 첨단과학도시와 같은 실속 없는 구호성 이름보다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관용의 도시 대구를 상상해 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기 전에 장기비전을 먼저 그리고, 그 비전을 구체화하려는 전략과 전술을 다듬어야 한다. 따라서 이제 전문가들이 앞장서 나서야 한다. 그 동안의 실망과 낙담을 툴툴 털어 버리고 희망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단체나 시민들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전통은 또 다른 전통으로 승화시켜 나갈 때, 살아 있는 전통이 되어 길이길이 이어질 것이다.
허증수(경북대학교 금속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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