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 소수자들, 보수도시 대구서 '당당한 외출'

입력 2009-06-20 06:00:00

16일 만난 A(33·여)씨는 레즈비언이라고 했다. 이성에게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녀는 10여 년 전 '죽을 것 같은 사랑'을 겪고 난 후 레즈비언 생활을 해왔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일부 주변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커밍아웃' 정치인 최현숙씨를 보고 삶의 행보가 바뀌었다. 최 후보의 선거캠프 워크숍에도 참여한 그는 진보신당에 입당해 현재 성 소수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대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줄다리기 인생'

서울 사람인 A씨와는 달리 대구의 동성애자들은 지역사회 내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에서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것은 쉽잖다. 30대 직장인 B씨는 밤에는 게이바를 찾지만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이중의 삶을 살고 있다. 전문직 종사자인 C씨도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조차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다고 했다.

동성애자 D(28·여)씨는 "친구나 부모님에게 내 여자친구라며 자신있게 소개하지 못할 때는 가슴이 끊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동성애자 E(43·남)씨는 "나 자신을 속이고 결혼해 자식까지 있다"며 "과연 옳은 삶인지 고민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세상 밖으로 나서는 그들…

그동안 자신을 숨기고 살았던 지역 동성애자들이 커튼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20일 오후 동성로에서 '제1회 대구경북 퀴어문화축제'를 연다. 주최 측에선 "30여명 정도만 참여할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얘기했지만 지역에서 숨죽여 지내왔던 동성애자들은 하나의 큰 사건으로 보고 있다. 시민들도 "대구에서, 진짜?"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다. 젊은층은 큰 저항감이 없지만 나이든 층은 적잖은 거부감을 느끼는 듯했다.

이번 행사는 서울 이외 지역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행사다. 축제기획단 배진교씨는 "서울에서 10회째 행사가 진행돼 동성애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가장 보수적인 대구에서 동성애자를 위한 행사를 추진하게 됐다"며 "전국 시·도 가운데 수도권에 이어 대구에 동성애자가 많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고 말했다.

지역의 동성애자들은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많은 소수집단이 있고 성 소수자도 그 중의 하나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며 "그저 '그냥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자연스럽게 봐 달라"고 했다. 축제 기획을 맡은 A씨는 "올해는 예산사정으로 행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내년에는 행사 규모를 키워 대구에서 계속 행사를 열 계획"이라며 "'당당하게 즐겨라'는 이번 축제 슬로건처럼 성 정체성에 관계없이 시민 누구나 참여해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퀴어(Queer)=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 등 성적 소수자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다. 동성애자 가운데 남성을 게이(Gay), 여성을 레즈비언(Lesbian)이라고 구분한다.

※이반(異般)=국내 게이 커뮤니티에서 생성된 용어로, 이성애자를 '일반'이라 하는 데에 대해 동성애자를 뜻하는 용어.

※커밍아웃=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을 긍정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행위.

※스톤월축제=미국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에 있던 술집으로 1969년 성 소수자들이 억압에 항의해 경찰과 대치한 데서 유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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