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대학과 책]정상회담-세계를 바꾼 6번의 만남

입력 2009-06-17 14:56:17

한판 승부를 기대한다

데이비드 레이놀즈 지음/이종인 옮김, 도서출판 책과함께, 2009

이명박 한국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 두 정상이 워싱턴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만남입니다. 이들의 만남은 그냥 평범한 인간적인 만남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양국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분명 서사시적인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양자는 서로 다른 국적, 서로 다른 인종,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다른 생각과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더 중요한 점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공동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도발, 심각한 경제 위기가 그것입니다. 위기대응 방법도 유사합니다. '화합'을 통해 힘을 결집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중동 각국과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과거를 시인하고 이슬람에 화해를 요청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태평양과 중앙아시아 등지를 돌며 소위 '신아시아 외교'를 설파했습니다.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는 양자의 열망이 담겨있는 노력들입니다. 개인적인 공통점도 있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정상에 오르기까지 겪은 어려운 인생 역경은 서로가 교감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행로가 유사합니다.

다양한 이질성과 더 많은 동질성을 가진 이들의 만남을 세인들은 '정상회의'라고 합니다. 각국 대표를 '정상'이라고 칭하고 이들의 만남을 정상회의라고 최초로 명명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라고 합니다. 처칠이 '정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데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우선 산꼭대기를 의미하는 '정상'은 개인적인 승리와 해방을 맛보는 '정복'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좋든 나쁘든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내려다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정상은 또한 시나이산에 올라 율법을 가져온 모세를 연상시키기도 하며, 지상왕국의 비전으로 유혹받은 그리스도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은 폭풍우를 헤치고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이나 나폴레옹을 연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상 회담'은 높은 곳에 오른 대표자의 만남이라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두 적수 사이의 '위험스러운 만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강렬한 의지에서 터져 나오는 극적인 행동으로서 새롭고 장엄한 전망을 걸고 벌이는 한판 승부입니다. 자국민과 세계인이 지켜보는 데서 모든 것을 걸고 벌이는 최후의 도박인 것입니다. '상대에 대한 환상'과 '준비한 패'를 총동원하여 건곤일척의 기회에 승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09년 6월의 워싱턴 정상회담, 40대의 젊은 오바마 대통령과 백전노장의 이명박 대통령의 한 판 승부는 자못 기대가 큽니다. 1961년 쿠바 미사일 사태를 두고 벌였던 케네디와 흐루시초프의 한판 승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1978년 중동전쟁을 종식시킨 카터의 캠프 데이비드가 될 것인가?

치밀하고 정교한 외교공학, 흥미진진하고 가슴 졸이는 '정상회담'의 이야기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국제역사학과 교수이신 데이비드 레이놀즈 교수의 『정상회담-세계를 바꾼 6번의 만남』(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2009)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레이놀즈 교수는 20세기에 벌어진 6차례의 정상회담의 과정을 문서보관소에서 새로 공개된 자료들을 분석하여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정상회담의 성사과정에서부터 정상회담 현장의 세세한 분위기, 그 성과까지를 복원해 내었습니다. 정상회담을 하나의 인간 드라마로 다루면서, 지도자들이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어떻게 파악했고 자신의 카드 패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잘 묘사하였습니다. 정상회담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변수들도 주제에 포함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항공기와 정상회담의 함수 관계입니다. 수송 수단으로서의 비행기 덕분에 정상회담이 더 쉽고 더 잦아졌다는 이야기, 1938년 9월 영국의 총리는 공중전의 위협을 막으려고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노동일(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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