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이거 신고 댕기라" 어머니가 건넨 꽃버선

입력 2009-06-13 06:00:00

희끗희끗한 머리에 말없이 밭일에 매달려 오늘도 힘든 하루를 견뎌내실 부모님! 일 좀 도와드리겠다고 내려가면 '너거는 못한다' 하시면서 자식들 오는 날은 '들일 휴무 날'로 정해놓고 맘껏 쉬다 가라는 부모님. 행여 도시에 있는 자식들 집으로 행차하실 때면 버스에 고춧가루며 콩이며 마늘종이며 힘센 장정이 들어도 무거울 법한 짐을 끙끙 내리시며 활짝 웃으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어린다.

감주 만드시는 엄마 옆에서 쫄랑쫄랑 따라다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나도 두 아들의 엄마가 되어 기쁨도 슬픔도 참고 견뎌내는 나이가 되었다. 난 어디든 슬쩍 부딪쳐도 뼈가 좀 잘 부러지는 편이다. 잘 아프지도 않고 아파도 언제나 긍정적인 나에게 그 정도는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병원에선 골다공증에 가까우니 항상 조심하고 신경 쓰라고 한다. 엄마, 아버지 얼굴 뵈러 고향에 내려간 날, 그만 우연히 그 말을 하고 말았다. 엄마는 뼈 약 사먹어라. 병원 치료해라 하시면서 큰 걱정을 하셨다. 엄마는 서랍에 아껴두었던 꽃이 예쁘게 그려진 새 버선 한 켤레를 내게 내미셨다. "이거 집에서 매일 신고 댕기라. 니 하도 바쁘게 설쳐대다가 저번에 발가락 부러졌었잖아. 야야! 이거 꼭 신고 조심해래이. 아프지 말고…." 울컥 나오는 눈물을 속으로 삼키면서 "응, 엄마 꼭 신을게. 예쁘네. 근데 새거 말고 헌거 도. 새거는 엄마가 신어라. 난 엄마 신던 기 좋다."

집에 와서 버선을 신어보았다. 엄마 품처럼 따스하고 좋았다. 폭신폭신 너무 좋았다. 도착했다고 전화 드리니 "네 가방에 돈 넣어 놨으니 뼈 약 꼭 사먹으레이" 하신다.

어찌 자식이 부모님 끄트머리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손안에서 몽글몽글 거품을 일으키는 버선을 씻을 때면 엄마 생각에 마음은 고향을 달려간다. 오늘도 버선을 신고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다. 낡고 해어져도 끝까지 나랑 함께할 꽃버선. 잊지 못할 최고의 선물을 주신 엄마. 고맙습니다. 그리고 딸이 많이많이 사랑합니다.

황미양(대구 북구 동천동)

최신 기사